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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운드」 화의 평가절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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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영국의「파운드」화 평가절하가 단행됨으로써 국제통화금융체제에 적지 않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2차대전후의 영국경제가 계속 상대적 쇠퇴과정을 걸어왔다는 사신은 널리 알려진 바와 같거니와 그 쇠퇴과정이 더욱 노골화 한 것은「윌슨」노동당정권이 정권을 인수한 64년을 전후해서였다 할 수 있다.「윌슨」정권이 성립된 계지자체가 영국의 국제수지악화에 있었던 만큼 이번 평가절하는「윌슨」정권이 물려받은 유산의 중압에 짓눌리는 역사적「아이러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영국경제의 상대적 쇠퇴과정은 제국의 몰락이라는 정치적 과정의 파생 물임과 동시에 영국경제의 뿌리깊은 보수성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과 구주제국이 전후의 부흥과정에서 보여준 비약적인 기술혁신과는 반대로 영국산업의 기술혁신은 지지 부진했다는 점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기술적 진보비율과 혁신투자의 상대적 낙후는 영국경제의 성장률을 2%수준에 머무르게 하고 있으나 생산성 향상비율을 초과하는 임금인상압력은 어느 나라보다도 강력해서 영국경제의 대외경쟁력은 강화될 수 없었던 것이다.「윌슨」정권은 이러한 임금·물가의 악순환을 단절하고자 66연도부터 임금·물가 동결정책을 강행하는 한편 사양산업의 국유화를 단행했으나 이러한 극단적 조치는 재정부채의 가중과 격심한「스트라이크」파동을 유발함으로써 오히려 영국의 대외경쟁력을 약화시키고 말았다.
이러한 영국경제의 기본적 허약성에 더하여 영국의 대외경제경경도 계속 악화되었다. 월남전쟁에 따른 미국의「인플레」와 고금리정책, 중동전쟁과「수에즈」운하의 폐쇄, EEC가맹의 좌절 등 영국경제에 타격을 줄 여건이 계속 악화되었기 때문에 오늘의 평가절하가 불가피했던 것이다.
이번 평가절하는 영국의 국제수지개선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미치는 국제통화체제에의 영향은 심대한 것이다.

<「달러」「파운드」체제의 동요>
우선「달러」「파운드」를 기축으로 하는 IMF체제가「프랑」「마르크」등이 참가하는 다원체제로 변질되는 계기를 마련할 것이다. 국제결제수단의 25%를 지배하고있던「파운드」는 EFTA의 상대적 퇴조와「파운드」신용의 지주역할을 해온「달러」신용의 악화로 기축통화로서의 구실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미국의 금 준비고가 1백30억「달러」를 하회하게되면서「달러」가「파운드」를 구제할 여력은 없게 되었고「달러」「파운드」의 약화 때문에 IMF는 SDR라는 새로운 신용수단을 마련하게 되었던 것이다. SDR의 창조합의가 「달러」「파운드」체제의 수정을 위한 제1보였다면「파운드의 평가절하는 그 제2보라 할 수 있다.
그 동안 불란서와 서독은 축적된 외화보유고를 배경으로 하여 국제통화체제에의 참여를 노려왔던 것이며 때문에「파운드」화의 지위악화를 노려 영국의 EEC가맹을 거부했던 것이다. 명분으로는「파운드」화의 신용이 회복되지 않는다면 EEC에 가맹시킬 수 없다는 입장을 EEC제국이 취했던 것이지만, 실질적으로는「달러」「파운드」체제의 수정을 노려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국제결제수단의 다원화의 계기를 마련하는「파운드」의 평문절하로 앞으로 당분간 국제통화체제를 유동적인 상황으로 몰아 넣을 것이며 때문에 새로운 국제적 고금리시대의 계기를 마련할 것 같다.「베트남」전쟁에서 오는 미국의 고금리정책과 세계적인 자본부족상황 때문에 일반화하여 가고 있는 고금리화의 경향성은「파운드」화 평가절하로 더욱 가속될 것이다.
이미 미국이 재할 비율을 0·5% 인상했고 영국은 8%로 인상했으며「캐나다」가 6%로 인상했다. 이러한 금리인상은 단기자본이동에서 오는 국제수지악화를 방지하자는 단기대책이라 할 수 있는데 금리의 상호인상이 단기간 내에 안정되느냐의 여부는 오로지 영국의「파운드」화 평가절하가 성립하느냐의 여부에 달렸다 할 수 있다.

<국제균형과 국내균형>
외신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EFTA권과 영 연방제국이「파운드」화 평가절하에 뒤따를 것이라고는 하나 여타국가는 평가절하를 단행치 않을 것이라 하므로 우선은 경쟁적 평가절하과정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선진국간의 평가절하 경쟁이 없는 한 일단평가절하의 효과는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영국이 평가절하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국제적인 금융지원이 선행되어야 하나, 이 문제는 동정적으로 받아 들여지고있는 것 같다. 이번「파운드」화 평가절하를 성립시키기 의해서는 30억「달러」의 차관이 필요한 것이라 하며, 그중 약 절반인 14억「달러」는 IMF에서, 나머지는 여타선진국에서 지원해 줄 것이 틀림없는 것 같다.
따라서「파운드」화의 평가절하가 성립하느냐의 궁극적「키」는 영국자체의 능력에 달려 있다 할 수 있다. 생산성 향상비율을 상회하는 대금인상압력을 자제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 문제의 하나이며 이미 낙후된 영국산업의 기술수준과 산채구조상의 결함을 극복하기 위한 혁신투자능력이 얼마나 되느냐하는 것이 둘째 문제라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재정팽창을 얼마만큼 억제할 수 있으며 국민의 소비억제와 근로정신이 얼마만큼 진작될 것이냐는 「파운드」화 평가절하의 성립여부에 크게 작용할 것이다.
영국의 평가절하가 국제적인 협조로 커다란 파동 없이 수습될 것은 분명하다 하겠으나 국내정책의 실패가 얼마만큼 커다란 국제적 시련을 자초하는가 하는 점을 우리는 뼈저리게 느끼는바 있어야 할 것이다. 국내물가의 지속적인 상승이 파국적인 대외 불균형을 초래한다는 경제적 철칙에 비추어 볼 때 우리로서도 반성하는바 있어야 할 것이다. 무모한 고도성장정책이 통화금융정세를 악화시키고「인플레」를 가중시키면 수출정체가 불가피하고 따라서 평문절하가 불가피하다.
지난날 평가절하를 식은 죽 먹듯 단행했어도 그럭저럭 지탱한 것은 원조 덕분이나 이제 그러한 구제수단이 사라져가고 있으므로 평가절하를 두려워 할 단계에 우리도 처해있음을 확인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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