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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고에서 얻는 지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사람의 몸에 병이 생기면 그 자신뿐 아니라 온 가족 친지가 법석을 하는 일이 있다. 문복을 한다, 무당을 부른다, 탕약환약 조약을 쓴다, 주사를 맞는다, 입원을 한다, 별의별 짓을 하다가 명이 있으면 결국 낫고야 만다. 낫게 되면 모두들 제 힘이 그 회복에 공헌한바 있음을 자랑하고, 병자를 걱정하던 사람들은 위로와 축하를 하며 반가와 하는 것이 인정이다. 병이 난 것은 불행이지만 병이 없었더라면 이런 반가움도 없었을 터이니 인생은 고락과 희비의 교차이라고 알맞은 이치로 자위들 한다. 그리고 병으로 인하여 겪은 많은 노고와 걱정과 낭비와 손해에 대해서는 팔자소관으로 돌린다.
국가생활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없지 않을까 한다. 어렵지 않은 일이 큰 문제가 되어 소란을 피우기도 하고 해결에 바른길을 찾지 못하여 의외에 오랜 시간을 허비할 수도 있고 그로 인한 피해를 계산할 수가 없어서 국운의 기박함만 차탄하기도 한다. 국민의 한사람 한사람은 인체의 세모 한 개 한 개와 비슷하여 제아무리 애쓰고 노력하여도 전체의 동향성취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듯하다. 정치적 문제라는 것이 생겨 정계가 떠들썩하고 신문의 활자가 크게 눈에 띄고 다방과 집회에 화젯거리가 많아지면 그때그때 심심하지 않게 재미로 분 시간을 보낼 수 있지만 그런 문제 때문에 가치 있는 일을 못해서 입는 피해에 대해서 계산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지나간 일은 역사에 속하는 것이고 역사에 있어「만약에」란 한가한 사람의 정신적 장난에 불과하다고들 한다. 국제경쟁이 없는 세계나 모두가 잘살고 일이 없어 도리어 심심할 때가 되기 전에는 국민 제 각자가 가치 있는 일을 가장 많이 잘함으로써만 한 국가 민족이 열패하지 않을 것이 아닐까. 병자가 건강을 회복하여 병에 대한 저항력이 더해지고 다시 같은 병에 안 걸릴 경험을 얻고 다음에 병들 때에 불필요한 수고를 안 할 지혜를 체득하지 않는다면 그 환자는 병고로 덕을 본 것이 없겠다.
우리 정계는 이번 같은 몸살을 치르고 어떠한 소득을 본 것인지 한번 더 기대를 걸어보기로 하자. 권중휘<전 서울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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