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학교 지정.운영 놓고 서울교육청·시의회 갈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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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원초등학교 5학년 1반 학생들이 2일 학교 텃밭에서 허영주 담임 교사로부터 채소 재배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이 학교는 2011년 혁신학교로 지정됐다. 텃밭 가꾸기는 혁신학교 프로그램의 하나다. [김상선 기자]

2일 오후 서울 노원구 상계동 수락산 자락. 인근 상원초등학교 4~5학년 학생 수십 명이 ‘텃밭 가꾸기’ 수업을 받고 있었다. 이들은 자신만의 텃밭에서 상추·배추·고구마 등을 가꾼다. 올겨울엔 텃밭에서 기른 배추로 김장도 할 예정이다. 5학년 김동천(11)군은 “처음엔 익숙하지 않았지만 이젠 이 수업이 체육시간만큼 기다려진다”며 “내가 직접 심고 물을 줘 키운 채소를 먹는 게 신기하다”고 말했다. 이런 수업이 가능한 것은 상원초가 혁신학교라서다.

 교육과정·학교 운영에 교사의 자율성이 보장되고 시교육청이 연간 1억4000만원가량의 예산을 지원한다. 이 때문에 특화된 교육이 가능하다. 상원초는 지원받은 예산으로 밭 대여비용 등을 충당한다.

 하지만 혁신학교는 올 들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당선된 보수성향의 문용린 서울시교육감은 올해 초 “혁신학교에 대한 평가가 우선”이라며 혁신학교 추가 지정에 제동을 걸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혁신학교 자체는 반대하지 않지만 지원액이 적정한지는 성과감사 등을 통해 평가해 보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달부터 7월까지 지정 2~3년차인 10개 혁신학교에 대한 성과감사가 이뤄진다.

 그러자 서울시의회가 조례안 제정이라는 강수를 들고나왔다. 혁신학교 운영지원위원회란 심의기구가 혁신학교 지정·취소 등을 심의해 혁신학교 운영의 지속성을 보장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시의회는 지난달 임시회에서 조례안을 처리하려 했지만 서울시교육청의 반발로 처리를 6월 정례회의 때로 미뤘다.

 시교육청은 “혁신학교 지정·운영은 교육감 고유의 권한”이라는 입장이다. 조례가 통과되면 시의회에 재의를 요구하거나 대법원에 제소할 방침이다.

 갈등의 배경엔 이념 대립이 깔려 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등은 혁신학교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교사들 주도로 이뤄졌다는 점을 들어 “혁신학교에서 편향된 교육이 이뤄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문 교육감도 교육감 선거 당시 “혁신학교는 전교조 교사들의 해방구”라고 말했다. 하지만 본지 조사 결과 서울 혁신학교 67곳 중 절반 이상인 초등학교(36곳)에선 전교조 교사가 10명 이상인 학교가 8곳에 불과했다. 전체 초·중·고 혁신학교 중 전교조 교사가 없는 학교도 7곳이었다. 중학교에선 전교조 교사가 10명 이상인 곳이 21곳 중 10곳(47.6%), 고등학교는 10곳 중 8곳이었다.

 정작 학부모들은 이념보다는 수업방식 면에서 혁신학교를 바라본다. 특히 초등학교 학부모들 사이에선 혁신학교의 인기가 높다. 학부모 양승은(40)씨는 “새로운 수업방식으로 인해 아이들이 학교 가는 걸 좋아한다”며 “일부 부모는 서초·분당 등에서 위장전입까지 할 정도”라고 말했다. 부동산 시세 역시 혁신학교 배정이 가능한 아파트 단지가 4000만원 정도 높게 나타났다. 반면 입시 부담이 높은 고등학교에선 혁신학교식 수업에 대한 선호도가 떨어진다.

글=이승호·손국희·강나현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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