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추경예산 서둘러 처리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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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민주통합당 박기춘 원내대표가 “적자 국채 발행에 따른 재정건전성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추경예산을 간단히 처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최재성 국회 예결위 민주당 간사는 “소득세법상 세율 최고구간의 과표를 인하하거나 법인세 최저한세 상향을 수용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상의 증세를 요구하며 추경예산안 처리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이에 따라 예결위의 계수조정회의와 전체회의가 잇따라 무산됐다.

 민주당의 주장은 액면상 하나도 틀린 게 없다. 적자 국채를 발행하면 재정건전성 대책이 뒤따라야 하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민주당이 이런 주장을 하는 건 염치없어 보인다. 추경 편성은 경기침체로 인한 세수 부족과 함께 복지지출이 늘어난 게 중요한 원인이다. 올해에 증액된 영·유아 무상보육 예산 1조500억원, 단계적 반값 대학등록금에 따른 1조250억원, 훌쩍 1조원이 넘어선 학교 무상급식,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에 따른 7300억원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선거 때 어느 정당이 이런 복지공약들을 먼저 내걸었는지 궁금하다.

 증세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사안이다. 화급을 다투는 추경과 연계해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내긴 무리다. 소득세·부가가치세·법인세 가운데 어느 것을 얼마만큼 올려야 할지는 수많은 공청회를 통해 전문가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할 필요가 있다. 민주당이 소득세와 법인세를 손질하자는 것은 추경예산을 인질로 삼아 자신들의 ‘부자증세’ 공약을 관철시키려는 게 아닌지 의문이다. 야당이 보류된 일부 경제민주화 법안을 다시 거론하는 것도 재정건전성을 걱정하는 순수함보다 불순한 정치적 의도가 어른거린다.

 우리 경제는 매우 불안한 상황이다. 민간소비·설비투자·수출이 한꺼번에 가라앉고 있다. 하루빨리 성장 모멘텀을 되살리기 위한 신속한 재정 출동이 절실하다. 우리가 적자 국채를 발행해서라도 추경예산 편성에 찬성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제가 정상 궤도에 올라야 국내총생산(GDP)이 늘어나고, 세수 기반 확대와 함께 재정건전성도 확보할 수 있다. 증세는 그 이후에 논의해도 늦지 않다. 경제정책은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추경예산은 제때, 과감하게 집행해야 제대로 효과를 볼 수 있다. 2008년 리먼 사태 때 미국 의회가 공적자금을 놓고 시간을 끄는 바람에 얼마나 큰 홍역을 치렀는지 참고해야 한다.

 박근혜정부도 좀 더 솔직해져야 한다. 경제불안을 강조하면서 추경예산 통과에만 집착해선 안 된다. 앞으로 늘어날 복지비용을 감안하면 언제까지 적자 국채 발행에 의존할 수 없다. 정부가 만지작거리는 비과세 감면 정비와 세출 구조조정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할 게 분명하다. 박근혜 대통령의 “증세는 없다”는 약속에 지나치게 얽매이면 앞으로 건전한 재정은 장담할 수 없다. 여야와 정부는 6일까지 추경예산안을 처리하기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도 앞으로 증세를 포함해 재정건전성 확보를 위한 종합적인 처방을 내놓겠다고 약속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