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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제와 「유엔」의 무관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유엔」총회정치위는 우방이 제출한 남북한 대표 조건부(실질적인 단독) 초청 안을 찬 58, 반 28, 기권 25표로 통과시키고 공산 측이 제출한 남북한 대표 무조건초청 안을 찬 37, 반 50, 기권 24표로 부결시켰다.
이로써 한국대표만이 전과 다름없이 단독으로 정치위(제1위)에 참석하게 되었다. 그것은 북괴가 상투적으로 「유엔」의 권위와 권능을 인정하지 않았던 터이므로 비록 가결된 초청안이 조건부라고는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북괴 대표의 출석이 전혀 불가능한 때문이다.
아무튼 절차 문제에 관한 첫 관문에서 우리의 외교 진이 개가를 올리게 된데 대하여 우리는 그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바이며 앞으로 남은 과제인 통한결의안 같은 기본 문제에 있어서도 계속 우리의 뜻이 관철되기를 바란다.
그런데 이번 절차 문제에서의 표결 결과를 면밀히 검토해 볼 것 같으면 몇 가지 교훈이 추출될 것으로 보인다.
첫째, 어떤 한국대표는 표결이 있은 뒤 『투표「패턴」이 한계점에 도달하였다』고 술회하였다 하거니와, 해마다 되풀이되는 똑같은 행사가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큰 진전을 기록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러한 의견을 정당화 시켜주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둘째, 우리는 투표결과의 저변에 감추어진 한국 문제에 대한 「유엔」의 일반적 무관심 내지 방기 경향을 발견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한국 초청안이 작년의 39표 차에 비해 9표나 적게 가결되었다는 사실은 그것대로 문제가 되겠지만, 기실 그것보다는 기권 표가 작년의 21표에서 25표로 늘어났다는 것이 더욱 주시될 만한 사실일 것 같다.
「유엔」에서의 한국 문제 투표는 그 시간에 「파티」가 있었느냐 없었느냐, 아니면 그 때가 낮이냐 밤이냐에 따라 그 결과를 달리할 만큼 민감하다고 한다. 그리하여 한국 대표는 기권 표, 결석 표로 구성되는 이른바 유실 표 방지에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 온 것으로 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기권 표가 늘어나고 결석 표가 여전하였다는 것은 그렇듯 민감하다는 사실 자체와 함께 한국 문제에 대한 일반적 무관심이 얼마나 끈덕지게 「유엔」기류를 밑바닥에서 위협하고 있느냐 하는 반증으로 될 것이다.
근래 지적되는 「유엔」에서의 한국 문제 토의에 가해지는 도전의 내용이 첫째, 세계 정치에 있어서의 「리얼리즘」의 물결이요, 이른바 「프린서플·오브·유니버설리티」(보편성의 원칙)의 강조이며 둘째, 해마다 되풀이하여 결의안을 가결시키긴 하였으나 별 진전이 없었다는데서 오는 권태감이 「유엔」결의의 유효성과 관련되어 고찰됨으로써 한층 현실화 압력으로 전화되고 있다는 사실로 채워지고 있음에 비추어 그러한 무관심은 중대 문제라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우리는 비록 그것이 연례적인 「유엔」에서의 외교전쟁에 불가한 것이라 하더라도 벌어진 싸움에는 일단 이겨놓고 있어야한다. 그러나 점증하는 무관심 속에서 한계점의 노정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이기 때문에 이러한 노력이 어떠한 기본적 성찰도 없이 앞으로도 의구하게 계속되어야 할 것이냐 하는데 대해서는 회의가 없지 않다. 그런 뜻에서 금 제 22차 「유엔」외교의 도약을 위한 비옥한 밑거름이 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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