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고정애의 시시각각

지금 민주당, DJ인들 이끌 수 있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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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고정애
논설위원

“이승만 독재 물러가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운동장을 뛰어다닌 초등학생이 있었다. 고교생이 되어선 박정희 정권의 3선 개헌에 반대하는 데모를 했다. 30대 초반인 1983년엔 시대상에 불끈해 YS를 찾아갔다. 2000년대엔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를 위해 뛰었고 박근혜 당 대표 체제가 들어선 이후엔 줄곧 ‘박근혜’였다. 2008년 총선을 앞두고 이명박계에 의해 낙천됐지만 2년 뒤 “원내대표가 돼 도와 달라”는 이명박계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개인적 한은 제쳐 뒀다. “이명박 정권이 성공해야 박근혜 대통령이 가능하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로 인해 박근혜계와 멀어졌고 지난해 총선 때엔 공천을 받지 못했다. 그래도 대선 국면에서 화끈하게 도왔다. 당 사무처에서 “캠프에서 유일하게 일한 게 그”라고 할 정도였다.

 누군지 짐작할 수 있을 게다. 얼마 전 보궐선거에서 배지를 단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이다. 몇 년 전 그는 자신의 정치를 이렇게 요약했었다. “정치인이 자기 정치를 안 하는 걸 정치인이라고 할 수 있나. 하지만 나는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그동안 생각을 안 했고 어른들을 많이 모셨다. 김영삼·이회창, 나중엔 박근혜 대통령을 만들겠다고 했다.”

 지금은 ‘무대’, 즉 김무성 대장으로 성장했지만 그땐 그랬다. 리더를 위하는 사람이었단 말이다. 요즘 용어론 팔로어다. 김 의원이 두드러진 경우이지만 여권엔 유사한 유형의 정치인이 적지 않다. 그렇다면 야권은? 언뜻 떠오르는 이가 없어 야권 사정에 밝은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에게 물었다.

 -민주당엔 김무성 의원 같은 이가 있나.

 “글쎄…. 김한길 의원 정도?”

 김한길 의원은 그러나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과 절연했다. 결국 민주당엔 김무성 의원 같은 정치인이 드물다는 얘기였다. 하기야 스스로 “화이부동(和而不同)하는 힘이 약하다”(김부겸 전 의원)고 하지 않나. 한성대 김상조 교수의 평가는 더 신랄하다. “민주당은 선거로 자신들의 보스를 뽑아놓고도 절대 그 보스를 따라가지 않은 DNA를 가진 사람들로만 모인 조직이다. 박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리더십과 새누리당의 해바라기성 리더십이 바림직한 것이라고 평가할 순 없다. 그러나 어떤 유형의 리더십과 팔로어십일지언정 없는 것보단 있는 게 낫다.”

 민주당에선 그러나 여전히 리더십의 부재를 비판하는 목소리만 크게 울릴 뿐이다. 팔로어십도 문제인데 말이다. “리더 탓”만 하고 “내 탓이오”는 안 한다는 말이다.

 물론 여야의 기질 차이를 낳을 법한 정치적 조건이 있긴 하다. 새누리당엔 ‘공천=당선’인 곳이 60곳이 넘는다. 공천권을 쥔 권력을 따르는 게 합리적이다. 민주당이 그러기엔 호남이 협소하다. 결국 수도권에서 승부를 봐야 한다는 건데 그렇게 하려면 튀는 게 나은 선택이다.

 저간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요즘 민주당은 심하다. 크게 뭉치지 못하는 사이 그저 그런 리더들이 그저 그런 권력을 탐하며 반목하는 게 구조화됐다. 그 ‘찌질함’이 ‘○○민주당’과 ‘민주○○당’ ‘민주당’을 오가는 당명사(黨名史)에 고스란히 배어 있을 정도다.

 일각에선 5년 후엔 기대해볼 만하다고 주장한다. 문재인·손학규·김두관 등 재도전 케이스에 박원순·송영길 등 광역단체장도 있으니 일견 풍성해 보인다. 그러나 지금의 풍토라면 누구라도 ‘리더십 없는 리더’가 되기 십상이다. DJ의 자질을 가진 사람이면 된다? DJ는 몇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며 수십 년간 리더십을 갈고 닦았다. 장차 리더에게 그런 시간과 그런 시대적 조건이 주어지겠는가.

 이제 이틀 후면 민주당의 새 지도부가 선출된다. 당의 명운을 헤쳐나갈 당의 얼굴이다. 이들을 제대로 된 리더로 만드는 건 결국 민주당 한 명 한 명이다. 결과가 어떻든 승복하라. 힘을 실어줘라. 좋은 리더를 만드는 건 좋은 팔로어다. 정 어려우면 DNA를 바꿔라.

고정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