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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영화의 새로운 가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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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카하시 미이케의 '살인자 이치(Ichi the Killer)'에 나타나는 가학 피학성 변태 성욕.
올 홍콩영화제는 사상 최고의 해를 구가하고 있다. 아시아 전역에서 영화가 붐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와호장룡(Crouching Tiger, Hidden Dragon)' 이후 중국 영화는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고, 홍콩은 중국 영화로 인한 흥분의 도가니다. 게다가 이번 영화제에는 중국을 비롯해 일본, 대만, 홍콩, 한국, 필리핀 등에서 다양한 실험영화들이 출품된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려온다. 비디오 포맷으로 찍은 이 영화들의 대부분은 사회에 속하고 싶은 욕망과, 동시에 개인의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젊은이들의 모순적인(그래서 때때로 비극적인) 모습에 극도로 밀접하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수 많은 영화들은 대부분 아직 성공적이기보다는 시도에 그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영화가 다루고 있는 근심과 죄의식, 소외감 등은 관객들을 소외시키고 아시아 영화가 대단히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중국의 장 밍 감독의 '주말 음모(Weekend Plot)'가 그 전형이다. 베이징에서 온 다섯 친구들은 양쯔강에서 수영복을 입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45분을 보낸다. 그리고 영화의 나머지 후반부도 마찬가지다. 한줌의 기지와 감흥도 없다. 정재은 감독의 '고양이를 부탁해(Taking Care of My Cat)'에서 다섯 명의 한국 십대 소녀들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도 마찬가지로 무미건조하다. 지난해 '플란다스의 개(Barking Dogs Never Bite)'로 떠오른 여배우 배두나는 이 영화에서 재능을 낭비했다. 감독은 영화 속 소녀들처럼 카메라를 흔들리게 하는데 만족한 듯 하지만 그저 일 없이 움직일 뿐 아무것도 아니었다.

최근 5년 동안 아시아의 영화제작자들은 서구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이들 중 다수의 감독은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한 캐릭터 개발, 응집성있는 이야기, 좋은 대사 연구를 도외시하고 아시아적인 내용으로 주목받기를 원하고 있다. 관객이 '와호장룡'의 땅인 아시아에 있다는 것에 대한 환기와 거대한 오리엔탈리즘의 무게 아래 영상은 기어가고 이야기는 표류하고 있다. 주웬이나 정재은 같은 감독들은 자신들의 영화가 중국 또는 한국 영화기 때문에 재미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할 때 더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홍콩 영화제를 살린 나라가 있다면 바로 일본이다. 일본은 놀랄만한 성과를 들고 나왔다. 지난 10여년간의 일본 영화시장 침체 덕분에 중국영화는 최근 욱일승천할 수 있었다. 일본의 감독들은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피하지 않고, 자국애호주의를 일소하는 등 현실적인 주제에 정면 도전했다. 학교 폭력과 십대의 매춘, 청소년 범죄 등이 신문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나라에서 일본 감독들과 작가들은 확실히 할 말이 있다.(영화에 매혹된 관객들은 말할 것도 없다. 불만 많은 십대들이 할 만한 것은 영화를 보러 가는 것 뿐이다.) 게다가 일본 영화들은 광적이며 궁극적으로는 상업적으로 성공한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일본 영화의 떠오르는 태양이라 불리는 3명의 감독들은 한단계 더 도약하기 시작했다. 이와이 순지는 대중적인 감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 '릴리슈슈에 대한 모든 것(All About Lily Chou-Chou)'에서 그의 카메라는 젊은 일본의 피곤한 이면을 짚어낸다. 수줍음 많은 십대인 유이치(하야토 이치하라 분)는 급우인 호시노(슈고 오시나라 분)에게 괴롭힘을 당한다. 영화 속의 여러 장면 중에는 유이치가 다른 5섯명의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자위행위를 강요받는 장면도 있다. 마음을 달래기 위해 유이치는 팝스타 릴리슈슈의 음악을 듣고 그녀와의 온라인 채팅에 몰두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간다. 유이치는 요코(이토 아유미 분)라는 이름의 피아니스트와 친구가 되고, 그녀는 그에게 현실의 릴리가 된다. 그러나 악당 불리노의 명령으로 요코는 여러 소년들에게 강간을 당하게 된다. 요코는 머리를 깎음으로써 여성성을 벗어버리고 조잡한 트위드 모자를 쓰고 학교로 간다. 유이치는 전보다 더 릴리의 웹사이트에 집착한다. 유이치는 "끝도 없는 굴레 속으로 계속 떨어지는 것 같다. 모든 사람들이 싫고 여기가 좋다. 이곳은 내가 속한 곳이다"라고 쓴다.

토요다 토시아키의 '우울한 청춘(Blue Spring)' 역시 남학교 속의 청소년을 그린다. 영화적 달콤함을 덧입혔지만 이 영화는 상당히 신랄하다. 배경은 어떤 조직에 참여하길 원하거나 조직을 만들려는 사람들이 모여있고, 젊은 야쿠자가 피를 흘리고 있는 운동장이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서로를 죽인다. 학교당국은 이 소문에 무관심하다. 아이들은 30미터 높이의 콘크리트 위에 서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난간을 붙잡을 때까지 몇 번이나 박수를 칠 수 있는가를 겨루는 위험한 변형 치킨 게임을 할 때에만 유일하게 휴식을 얻을 수 있다.

'릴리'에서처럼 토시아키의 세계 역시 영웅을 숭배하는 것만이 유일한 탈출구인 영혼 없는 쓰레기장이다. 우울한 청춘의 멋지고 초연한 주인공 쿠조(류헤이 마쓰다 분)는 학교에서 아웃사이더다. 당신이 카메라 렌즈 앞에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마쯔다처럼 되고 싶을 것이다. 그는 황홀하고, 때로는 천사 같아 그를 위해서는 죽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아오키(히로부미 아라이 분)도 마찬가지다. 영화 속에서 아오키는 비굴한 복종자에서 반항아로 바뀌는 역할이다. 쿠조는 아오키와 그 일당들에게 그럴만한 가치가 없다고 일축하지만, 그들을 위해 결국 희생을 한다. 영화의 멋진 마지막 장면에서 아오키는 쿠조가 지붕에 오길 기다린다. 마침내 쿠조가 나타났을 때 그는 금속 난관을 밀어내고 뛰어내려 죽는다.

이같은 경향은 카키하라(일본 영화 부흥기의 배우 아사노 타다노부 분) 가 '살인자 이치'에서 행복한 죽음을 맞는 것과 동일한 맥락에 있다. 이 현대 일본 영화에서 죽음은 유일한 탈출 방법으로 여겨진다. 이 악한 영화를 위해 극렬한 폭력 코미디 촬영작가 야마모토 히데오와 폭력 영화의 조타수 타카하시 미이케 감독과 힘을 합쳤다. 히데오는 감독은 만화영화를 만들었고, 미이케 감독은 지난해 '오디션'으로 컬트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카키하라는 가학 피학성 변태성욕자로서, 고장난 스피커 소리가 사랑의 신음보다 더 크게 들리는 지하 세계에 갇혀 사는 하찮은 악한으로 나온다. 그의 야쿠자 보스가 의문 속에 사라지자 카키하라는 납치자를 찾아나선다. 이 과정에서 그는 대저택을 환상적인 고문실로 바꾼다. 이후 그는 극도로 잔인한 살인에서 즐거움을 얻다가 정신분열증에 걸린 이치(오모리 나오리 분)를 만난다. 미이케 감독은 일본 사회의 병리를 피묻은 붓으로 굵게 그려냈다. 이치는 신발에서 가볍게 커다란 금속 회전검을 꺼내 희생자를 재빠르게 해치운다. 거의 대부분의 싸움에서 피가 흥건한 가운데 머리, 다리, 팔 등이 떨어져 나간다. 여성의 유두는 절단되고, 나체로 전기줄에 매달린 남자 희생자는 그의 가족에게 줄 돈을 잃기 직전까지 간다. 미이케 감독은 빈틈없고 자각적인 기술을 이용해 영화속 등장인물이 지니고 있는 정신적 문제와 감정장애를 정확하게 짚어낸다. 때때로 그는 스크린 밖에서 들리는 아이의 울음 소리를 이용해 관객들에게 이것이 비틀린 일본 사회가 생산해낸 아이들의 병적인 행동이라는 것을 인식시키려고 했다. 미이케가 항상 당신을 이해시킬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그는 어떻게 당신이 느끼게 할 수 있는가는 알고 있다.

신예 노부히로 야마시타 감독은 규율이 해이된 사회의 불투명한 삶과 사랑의 타락을 그리기 위해 모든 화려한 시각효과를 제거한 채, 학교에 가 본 적도 없고 사회의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 두 노숙자의 관계를 단순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들의 타락상은 성인 비디오에 녹화된다. 허무주의적이지만 단순하게 감동을 주는 것, 이것이 바로 홍콩 영화제에 참여한 다른 아시아 작가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 이 영화들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STEPHEN SHORT(TIME) / 이정애(JO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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