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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쑥 나타나 준우승, 유럽 F3가 놀란 임채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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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임채원은 올해 유러피언 F3 오픈 시리즈에 풀타임 출전한다. 2000㏄ 엔진을 사용하는 그의 머신은 최고시속 260㎞를 낼 수 있다. [사진 GP코리아]
임채원

모터레이싱은 국내에선 비인기 종목이다. 서울대를 졸업한 젊은이가 인생을 걸기엔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 그러나 드라이버 임채원(29·에밀리오데빌로타)에게 모터레이싱은 남들이 뛰어들지 않은 블루오션이다.

 서울대 출신 드라이버 임채원이 유러피언 F3 오픈 시리즈 개막전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임채원은 27일(한국시간) 프랑스 폴 리카르드 서킷(5.809㎞)에서 13바퀴를 35분52초314에 주파해 코파컵(F308) 클래스 2위에 올랐다. 우승자 캐머런 트위넘(영국)과는 1.6초 차이다.

 혈혈단신 유럽으로 건너가 대회를 치르고 있는 임채원은 “데뷔 무대에서 2위를 해 매우 기쁘다. 저의 가능성만 믿고 열정을 다해 도와주시고 응원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 대회는 포르투갈·독일·스페인 등지에서 모두 16차례 레이스를 펼쳐 우승자를 가린다.

 1m74㎝·67㎏으로 체구가 단단하고 눈매가 날카로운 그는 외모가 축구선수 같다. 어린 시절 꿈도 축구선수였지만 부모님의 뜻에 따라 학업에 전념했다. 2004년 서울대 기계공학부에 진학한 뒤 그는 못 이룬 축구선수의 꿈을 대신할 목표를 찾아냈다. 임채원은 “한국 최고의 자동차 연구원이 되는 것보다는 한국 최고의 드라이버가 되는 게 더 빠릅니다. 꼭 하고 싶고 반드시 해내겠습니다”며 부모님을 설득했다.

 2009년 7월 본격적인 카레이싱의 세계로 뛰어든 그는 이듬해 국내 자동차경주인 수퍼레이스 제1전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2010년 한국 모터스포츠 신인상을 탄 그는 이듬해 일본으로 건너갔다. F1(포뮬러원) 머신처럼 생긴 포뮬러카에 도전하기 위해서였다.

 지금껏 일반 승용차와 유사한 박스카만 탔던 그에게 포뮬러카는 미지의 신대륙이었다. 4~5개월 동안 그는 대회 때마다 코스를 이탈하고 방호벽을 들이받는 사고뭉치였다. 사고가 나면 수천만원씩 수리비가 깨졌지만 기량은 빠르게 성장했다. 마침내 2011년 10월 오카야마에서 열린 수퍼FJ 오카야마 시리즈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포뮬러에 입문한 지 1년도 안 된 풋내기가 10년 넘게 경력을 쌓아온 일본 경쟁자를 누른 것이다. 타고난 운동신경과 한 번만 달리면 서킷을 암기하는 명석한 두뇌, 기계공학을 전공하며 쌓은 운동역학 지식, 목표를 향한 강한 집념이 어우러진 결과였다. 그는 지난해 중국으로 옮겨 ‘아시아 포뮬러 르노’ 시리즈에 출전하며 지평을 넓혔다.

 일본과 중국에서 열리는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그가 쓴 비용은 10억원 정도다. 올해도 스폰서를 구하지 못하면 5억~6억원이 든다. 비용은 부친 임수근(59)씨가 댄다. 임씨는 “처음에는 유학비 정도를 내주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이렇게 돈이 많이 들 줄은 나도 몰랐다. 주변에서 날 두고 미쳤다는 사람도 있지만 누구나 나처럼 할 것이다. 아들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데 여기서 멈추면 지금껏 해온 게 물거품이 되는 거 아닌가”라고 말했다.

 임채원의 꿈은 F1 드라이버가 되는 것이다. 쉽지 않은 도전이다. 29세라는 나이도 부담스럽다. 그 역시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포기는 없다. “내 꿈은 후회 없이 멋지게 선수생활을 하는 것이다. 선수로 뛰며 얻은 소중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모터스포츠 산업이 성장하는 데 이바지하고 싶다.” F1 드라이버가 못 되더라도 나중에 코리아 F1 팀의 감독이 될 수도 있다는 게 그의 비전이다.

이해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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