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기업인 “정부가 결정 미리 안 알리고 밀어붙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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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0호 0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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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한 당국자는 식량공급난과 관련, “아침을 굶는 인력이 발생하고 주식이 된 라면의 경우 업체별로 차이는 있지만 어떤 회사는 바닥이 나는 등 여러 상황을 고려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당국자는 “북에 언제까지 끌려다닐 수 없다는 판단도 작용했다”고 말했다. 또 군 관계자는 “북한 군이 공단 주변에서 이상 징후를 보이지 않아 이번 조치는 공단 인력의 인질화에 대비한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편 북한의 개성공단 담당 실무기관인 중앙특구 개발지도총국의 대변인은 이날 조선중앙통신 기자와의 문답에서 “개성공업지구의 운명은 경각에 이르렀다. 완전 폐쇄의 책임은 괴뢰패당이 지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완전 폐쇄 여부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이에 앞서 북측은 우리 측 인력의 귀환을 앞두고 “신고된 것보다 나가는 물량이 많다”며 근로자들의 짐과 차량을 철저히 검사해 귀환 시간이 예정보다 늦어졌다. 북측은 일부 회사에 벌금도 요구했다. 한국전력의 김태성(53)씨는 “물건을 신고한 것보다 더 많이 실어서 두 개 업체가 30달러씩 벌금을 낸 것으로 안다”며 “공단에 완제품이 굉장히 많은데 이를 들여올 차가 없어 거의 싣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귀환한 공단 직원들은 식량 부족 사태와 관련해 상반된 발언을 쏟아냈다. 한전 직원인 김태성씨는 “라면을 주로 먹었고 부식이 없어 고생했던 정도”라고 했다. 그러나 SNG 장민창 법인장은 “부족한 것도 큰 문제도 없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체의 법인장은 “모자라면 나눠 먹으며 잘 지냈다”고 말했다. IS레포츠 이명희(62·여)씨는 “북한 종업원들이 야근할 때 주려고 쌓아둔 라면이 있고, 쌀도 부족하지 않았다. 다만 반찬이 부족해 인근에서 산나물과 미나리를 캐서 고추장에 찍어 먹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들 대부분은 “아무런 신변 위협도 느끼지 않았다”고 했다. 일부 인사는 “북측 총국원들도 공단이 빨리 정상화됐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얘기를 했다”고 전했다.

우리 정부에 대한 불만도 나왔다. 화인레나운 박윤규(61) 사장은 “정부가 기업을 너무 가파르게 몰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들을 맞으러 나왔던 녹색섬유 사장의 어머니 신정옥(77)씨는 “먹고살기 위해 열심히 일한 공단 사람들이 뭔 죄냐. 돈을 벌기는커녕 빚도 못 갚는데… 정부가 잘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개성공단기업협회는 이날 우리 정부의 귀환 조치와 관련해 “정부의 결정을 수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재권 회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갑작스러운 전원 귀환 결정에 매우 당혹스럽고 그 결정이 사실상의 공단 폐쇄로 이어질 것을 우려한다”며 “그러나 사전 협의나 통보가 없었던 점은 유감”이라고 말했다.

협회 측은 정부에 대해 ▶개성공단에 있는 거래처 소유의 제품과 원·부자재 보호 대책 마련 ▶남북 당국 간 대화의 지속적인 추진 ▶입주기업 재기를 위한 실질적 피해 보전 대책 마련 ▶30일 방북 허가 등을 요구했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이날 국회에서 “향후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겠다”며 “유지하는 것이 가장 좋은데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 단계별 대응 방안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 것이 있다”고 말했다. 기업 피해 보상과 관련해서는 “관계기관과의 대책협의회를 구성해 여러 방면에서 (대책을)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수출입은행은 입주 기업 지원 대책반을 기존 2개 팀, 15명에서 4개 팀, 27명으로 확대 운영키로 했다. 은행 측은 “남북협력자금 수탁기관으로서 특별자금 지원, 경협 보험금 지급 등 개성공단 입주 기업 지원 업무를 최대한 신속히 수행하기 위해 지원 대책반을 보강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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