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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신상옥-영화감독, 김정옥-중대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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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아시아」영화제다, 추석대목이다 하고 붐비는 영화가의 가을은 그 풍성한「셀룰로이드」의 영상 한구석에 한해 지구보다 더 메마른 인정들이 있다. 이른바 업자들의 「집안싸움」. 그러나 명분도 이유도 불투명한 이「가을의 열풍」을 피해 영화계의 실력자 신상옥 감독과 중대연극영화과 김정옥 교수가 자리를 함께 했다.
『금년 들어 부쩍 는 것 같습니다만 소위 그 「문예영화」라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신선생께서는….』
『한 마디로 말해서 바지저고리 입은 시골사람들이 봐서는 무언지 모르는 그런 영화의 대명사 아닙니까.』 함축성 있는 신감독의 답변. 그러나 그 역설의 농도가 너무 짙었다 싶었는지 이내 말을 바꾸었다. 『용어 자체도 일본서 빌어온 것이지요. 어쨌든 그 말을 쓰게된 동기는 영화를 너무 활동사진적 요소(그는 「재미」라 덧붙였다)에만 치중하다 보니 관객의 빈축을 사게되고 그래서 주제가 뚜렷한 것, 소재가 건전한 것을 찾아 문학작품에 눈을 돌리게 된게 시초라 생각됩니다.』
『말하자면 「문학작품을 영화화한 것」이란 뜻인가요.』 「문예영화」를 정의하는데 있어서 김교수는 사뭇 회의적인 표정이다.
『꼭 문학작품이 아니라도 무언가 주제에 「뼈다귀」가 있는 작품을 말하는 거겠지요.』꼭 집어서「이런 게 문예영화다」고 규정할 수 없는 그런 모호한 개념의 영화.
여기서 화제는 「연출부재」 「제작부재」로 번져 결국 「저널리즘의 부재」에 까지 비화되었다. 『예술자체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평가하는 작업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김교수는 역설했다. 이렇다할 전문지하나 없고 기껏해야 신문의 「가이드」식 단평 가지고서 어떻게 광범위한 영화예술을 평가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나는 본격적인 우리의 영화 역사를 20년으로 봅니다. 그러나 영화사20년은 다른 예술분야의 1백년에 해답합니다. 그동안 우리는 무엇을 해왔습니까. 문법도 제대로 익히지 않고 걸핏하면 「로컬·컬러」나 내세웁니다. 그러나 세계시장에서 갓 씌우고 바지저고리 입힌 것만으로 문법이 통할 줄 압니까. 인간의 본질이랄까 보편성이랄까 그것의 추구 없이는 어림도 없는 소립니다.』-몇 년 전 「라이프」지가 선정한 「세계의 영화감독 1백명」의 「리스트」에 낀 유일한 한국감독 신상옥씨. 그는 세계 속의 한국영화를 『무에 가깝다』고 혹평했다.

<전통 살려 세계화>
『우리의 전통과 세계성이 일치되어야겠지요. 그런 점에서 우리 영화는 형식면에 큰 파탄을 보이고 있습니다.』 『개인의 재능이나 특기를 판다면 몰라도 영화는 문화적 전통과 함께 「팀·워크」에 의해 이뤄집니다. 고도의 기술, 대자본, 그리고 작가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습니다. 전체적인 「레벨」이 상승해야 하는 거니까요.』
『하지만 20세기 문명을 총동원하다시피 한 「할리우드」에서도 터무니없는 영화를 만들어낼 때가 있지 않습니까. 가령 「007」같은 영화도…』
『「007」을 한마디로 악화라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 영화는 그 나름대로 대중 심리를 파고들지 않았습니까. 새로운 「타이프」의 「히어로」를 추구했다는 점에선 이것도 하나의 예술행위가 아닐까요.』 어쩌면 신감독 특유의 역설일지도 모른다. 영화도 기업인이상 관객이 많이 들어 흥행에 성공해야하지 않겠느냐는-.
『신선생께서는 감독이면서 또한 제작자이기도 하기 때문에 말씀 드리는데, 요즘 영화 제작계의 풍토는 무언가 잘못돼 있지 않습니까?』 드디어 화제가 업자분규에까지 미치자 신감독 얼굴엔 잠시 긴장이 맴돌았다.

<한·일 교류도 절실>
『분명히 잘못돼 있습니다. 원인은 기업정신의 결여에 있다고 봅니다. 가령 업자협회만 하더라도 이질적인 사람들이 모여, 서로 이해관계가 상반되기 때문에 혼란이 빚어집니다. 모두가 개인「플레이」지요. 몇 개의 중심세력을 구축하여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유대관계를 맺지 않는 한 악순환은 되풀이 될 것』이라 단언했다.
역시 「협회행정론」이다.
그러나 『조만간 영화계에도 세대교체가 이뤄질 것입니다. 모든 「테크니션」은 물러나고 진정한 예술인이 나올 시기가 되었습니다.』 그것이 우리 영화의 사는 길이라고 그는 말한다. 『「테크니션」과 함께 「아마추어리즘」도 물러나야 합니다. 가령 해외영화제 출품작을 선정할 때도 그 영화제의 내용과 성격을 아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의심스럽습니다. 「스포츠」의 경우는 해외출전 때 상대방의 기록을 대충 알고 있지 않습니까.』
김교수의 말이다.
이 가을에 나누고싶은 마지막 대화가 있다면-신감독은 기다렸다는 듯이 『소아병적인 사고를 버리고 한·일 문화교류를 터 놔야한다』고 말했고 김교수는 『 「필름·라이브러리」를 하루속히 발족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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