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치행위는 독재때 쓰던 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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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상 청와대 비서실장 내정자가 대북 송금 의혹의 해법으로 '정치적 해결'을 주장한 데 대해 민주당 조순형(趙舜衡)의원은 "옷 로비 의혹 사건의 교훈을 잊었느냐"며 직격탄을 날렸다.

趙의원은 2일 "대북 비밀지원 의혹에 대한 사실관계가 규명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이 문제를 국회가 다룰 수 있느냐"며 "文내정자의 발언을 납득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감사원조차 감사를 제대로 안하고 현대상선이 낸 자료를 그대로 발표하다시피 해 사실 규명이 안됐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특히 趙의원은 "노무현 당선자가 국민적 의혹사건에 대해 특검을 받는다는 각오로 철저히 수사하라고 했는데 무슨 사정 변경이 생겼다고 번복하는지 모르겠다"며 "만약 정치적 해결 주장에 당선자의 의중이 반영됐다면 이는 잘못된 일"이라고 盧당선자도 겨냥했다.

그는 통치행위 주장도 반박했다. 趙의원은 "통치행위는 독재정권 때나 있던 용어"라며 "헌법재판소가 1992년 금융실명제 긴급명령에 대한 재판 때 고도의 정치적 행위도 사법심사 대상이라고 판시한 바 있다"고 주장했다.

趙의원의 주장에 민주당 신주류 인사 일부도 가세했다. 신기남(辛基南)의원은 "의혹을 덮어두면 안된다는 원칙을 세워야 한다"며 "위법사실이 드러나면 사법처리까지 해야 한다"고 했다.

이에 따라 대북 송금 의혹에 대한 국회 차원의 해법 마련은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당장 한나라당은 이날 국정조사와 특검 실시를 주장했다. 의원들은 "정치적 해결은 어림도 없다"며 "고건 총리 인준과 4천억원 국회 국정조사 실시를 연계해야 한다"는 강경론을 폈다. 盧당선자 측이 송금의혹 수사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힌 만큼 총리 인준과 연계할 충분한 명분이 생겼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4일 총무회담부터 국정조사.특검을 요구하는 한나라당 이규택(李揆澤)총무와 정치적 양해사항으로 넘기자는 민주당 정균환(鄭均桓)총무 간의 충돌이 불가피할 것 같다. 자칫하면 盧당선자의 취임식 등 새정부 출범 일정이 헝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치권에선 盧당선자 측의 해법에 대한 여론의 향배가 국조.특검 여부를 결정지을 변수로 보고 있다.

남정호.박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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