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호 기자의 레저 터치] 주목! 남이섬 피 흐르는 ‘상상나라연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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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한국관광공사에서 사단법인 상상나라연합 창립 행사가 열렸다. 상상나라연합? 지난해 9월 10일 발족한 ‘상상나라국가연합’이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비영리 사단법인 인가를 받아 새로이 출범한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궁금했었다. 남이섬 강우현 대표와 전국 9개 시장·군수·구청장이 한자리에 모여 새로운 국내 관광 모델을 만들겠다며 출사표를 던진 게 벌써 7개월 전 일이다. 딱히 들려오는 소식이 없어 민간기업과 지방자치단체가 공동으로 관광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초유의 실험이 흐지부지된 건 아닌지 은근히 걱정하기도 했다. 16일 행사장에서 강 대표를 만났다.

상상나라연합은 애초부터 지자체의 요청에서 시작한 실험이다. 쉽게 말해 전국에서 70개가 넘는 지자체 대표가 강우현 대표를 찾아와 “우리도 남이섬처럼 만들어주세요”라고 부탁한 데서 사업이 비롯됐다. 도움을 청한 지자체 중에서 강 대표는 의지와 형편 등을 고려해 9개 지자체만 골라 상상나라국가연합을 설립했다.

문제는 돈이었다. 지자체 대표들은 강 대표에게 기꺼이 땅과 돈을 맡길 작정이었다. 하지만 구실이 없었다. 아무리 법규를 뒤져도 지자체에서 상상나라국가연합이란 정체불명의 단체에 예산을 건넬 명분이 없었다. 숱한 설왕설래 끝에 사단법인을 설립하기로 했고, 그게 7개월이 걸렸다.

처음엔 서울 강남구·광진구, 인천 서구, 경기도 양평군·가평군·여주군, 강원도 양구군, 충북 제천시, 경북 청송군 등 9개 지자체와 남이섬이 시작했지만 전남 진도군과 충남 서산시가 새로 가입하면서 모두 12개로 회원국이 늘었다. 이들 회원국은 분담금 2억원씩을 내 모두 24억원으로 사업을 도모한다.

지자체 개별 사업에 예산 수백억원은 우습게 들어가는 현실에서 24억원으로 전국 11개 지자체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다는 걸까. 쓰레기를 재활용해 남이섬을 새로 일으킨 강 대표는 24억원이면 일단 충분하다고 말했다. 이미 상상나라연합은 잔뜩 일을 벌인 참이었다.

지난해 가을 ‘상상디자이너’라는 이름으로 신입사원 10여 명을 채용했고, 지난 연말에는 남이섬에 회원국 9개의 특산품 매장도 연 상태였다. ‘장난끼 발명품 공모전’이라는 기발한 행사도 치른 뒤였고, 오는 8월에는 서울 코엑스에서 ‘상상엑스포’라는 또 다른 기발한 행사를 벌일 계획이다.

가장 흥미로운 건 가입국가 12곳을 버스가 정기적으로 운행하는 투어라인 사업이다. 광진구청장의 동의를 얻어 광진구에 있는 동서울터미널에 ‘상상나라연합 터미널’ 간판을 건다고 강 대표는 자랑했다. 상상나라로 가는 버스터미널이라. 해리포터가 런던 기차역 9와 4분의3 플랫폼에서 호그와트행 열차에 올라탔던 게 생각났다. 아무튼 상상나라에서는 수많은 일이 숨가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강 대표는 16일 저녁 만찬장에서 일찍 자리를 떴다. 청와대 모철민 교육문화수석이 갑자기 연락을 해왔다고 했다. 무슨 얘기가 오갔을까 궁금해 이튿날 전화를 걸어 물어봤다. “창조 경제? 이런 얘기를 하던데? 그래서 난 여태 남들이 안 하던 거 하고 안 만들던 거 만들었더니 돈이 들어왔다고 했지. 문화 융성? 융성시키겠다고 해서 문화가 융성이 되나? 엉뚱한 데 예산 쓰지 말고 사람에 투자하라고 했어. 너무 심하게 말했나? 표정이 무겁더라고.”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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