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지혜 묻힌 '말' 무덤 아시나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6면

예천군 대죽리 한대마을 입구에 새로 조성된 말 무덤과 말 관련 격언비. [사진 예천군]

경북 예천군 지보면 대죽리 한대마을 앞에는 말무덤이란 게 있다.

 말(馬)이 아닌 말(言)을 묻은 무덤이다. 이른바 언총(言塚)이다.

 전설은 이렇다. 옛날부터 이 마을에는 여러 성씨가 살았는데 문중끼리 싸움이 그칠 날이 없었다고 한다. 사소한 말 한마디가 씨앗이 돼 큰 싸움으로 번지는 일이 잦아지자 마을 어른들은 원인과 처방을 찾기에 골몰했다. 어느 날 나그네가 이 마을을 지나다가 산의 형세를 보고는 한 마디를 던졌다. “좌청룡은 곧게 뻗어 개의 아래턱 모습이고 우백호는 구부러져 위턱의 형세라 개가 짖어대니 마을이 항상 시끄럽겠구나.”

 대죽리를 둘러싼 야산은 형세가 마치 개가 입을 벌리는 있는 듯한 개 주둥이 모양이어서 ‘주둥개산’으로 불렸다. 마을 사람들은 개 주둥이의 송곳니 위치인 논 한가운데에 바위 세 개를 세우고 앞니 위치에는 개가 짖지 못하도록 재갈바위 두 개를 세웠다. 이어 모두 사발 하나씩을 가져와 싸움의 발단이 된 말썽 많은 말을 뱉어 사발에 담아 주둥개산에 구덩이를 파고 묻었다. 이때부터 마을에서 싸움이 사라지고 평온해져 지금까지 이웃 간에 두터운 정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예천군이 선조의 지혜가 담긴 말무덤을 산 교육장으로 다시 꾸몄다. 군은 지난해 10월부터 1억5000여만원을 들여 무덤과 작은 비석 하나만 있던 말무덤 주변을 정비했다. 또 말과 관련된 격언비 13개를 세웠다. ‘부모의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말이 고마우면 비지 사러 갔다 두부 사 온다’ 등이다.

 대죽리 김재련(60) 이장은 “전설은 500년쯤 됐을 것”이라며 “말무덤 때문에 요즘 다시 말이 많아지는 마을”이라고 말했다.

송의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