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숙의 기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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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1959년3월「스웨덴」의 유명한 음악평론가「테디·니브론」이 기고한 신문의 음악평을 보면『「바겔」교수가 길러낸 이 겸손하고 품위 있는 한국소년 이희춘군은 훌륭하고 예리한 연주를 보여주었다. 그의 기교는 나무랄 데가 없고 예술적인 원숙기에 도달하는 일보직전에 서있는 빛나는 연주였다』고 이씨의 연주회를 격찬했다.
이밖에도「스웨덴」각 신문은 천재소년 이희춘군에게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2년 후 그는 20세의 약관으로「스톡홀름」왕립「오페라」교향악단의「콘서트·마스터」로 초청되었다. 64년「스톡홀름」국립교향악단 제1「바이얼린」 연주로 초청 받았고 또한 독주자로서 지반도 확고하게 굳혔다. 오는4월에는 봄「시즌」을 맞아「유럽」일대의 순회공연을 갖게된다.
그가 유학의 길에 오른 것은53년 12살 때.
부산에서 기선을 타고 보이지 않을 때까지 조그만 손을 힘껏 흔드는 꼬마의 모습이 지금도 가슴 메게 한다고 부친 이은동씨는 말한다.
건너간지 1년 되는 겨울에는「브레드빈」시가 주최한 아동「스키」대회에서1등을 차지하기도 했다.
연주도 비약적으로 발전해서 55년에 왕립음악학교에 수석으로 합격했다. 나이가 모자라 학교의 규정에 특별히 예외를 만들지 않을 수 없었다. 58년「스웨덴」청소년 음악「콩쿠르」에서1등에 입상했고 59년에는「데뷔·콘서트」를 갖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격찬과 갈채 속에서도 그는 고향이 그리워 외로움을 이기기 힘들었다. 『휴가 때가 되면 친구들이 모두 고향에 가거나 여행을 떠나지요. 나는 언제나 고국에 한번 갈 수 있을까 생각하면 서러움이 복받쳐 오르더군요.』라고 그때의 감회를 말한다. 이번의 고국방문연주는 그에게 있어 각별한 의미를 지닐 것이 틀림없다.

<레퍼토리>
「비발디」의「소나타 D장조」 「로카텔리」의「소나타·다·카메라」그리고「파가니니」의 대표작이라 할「기상곡 작품24번」「상상」의「하바네라」「그리그」의「소나타 G장조」그리고「진딩」「클라이슬러」의 소품을 1부에서 연주하고 2부에는「모차르트」의 협주곡3번과「베트벤」의 협주곡D장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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