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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경제 다시 빨간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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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지난달 이후 미국의 주요 경제지표에 다시 빨간불이 켜지고 있다.

이에 따라 한동안 뜸했던 미 경기의 '더블딥(용어해설 참조)' 논란이 재차 달아 오르고 있다.

아직은 경기의 장기침체 국면진입을 우려하는 견해보다 단기침체 후 재상승을 전망하는 낙관론이 우세한 편이다.

하지만 그런 낙관론자들마저도 이라크 전쟁.북핵 사태 등 지정학적인 문제들의 조기 해결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서 미 경기침체 장기화로 인한 세계경제 악화의 우려를 낳고 있다.

◇다시 악화되는 지표들=2001년 3월부터 침체국면으로 들어서 그해 말부터 회복세를 보이던 미 경기가 지난달 이후 급작스레 악화되고 있다. 산업생산이 줄고 무역적자는 대폭 늘어났다. 또 소비동향 지수마저 하락, 생산과 소비활동이 모두 좋지 않다.

미 상무부는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지난해 4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0.7%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이는 직전 분기 성장률인 4.0%를 크게 밑도는 것일 뿐 아니라 2001년 1분기 이후 최저 수준이다. 경제 전문가들은 당초 1% 정도의 성장을 예상했다.

이에 앞서 민간경제조사기구인 콘퍼런스보드는 1월 소비자신뢰지수가 79.0으로 지난해 12월의 80.7에 비해 더 떨어졌다고 28일 발표했다. 이는 1993년 11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생산도 줄고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산업생산은 전월 대비 0.2% 감소했다. 이는 월가 전문가들의 예상(0.3% 증가)과는 정반대였다.

이처럼 생산과 소비지표가 동시에 나빠진 가운데 무역적자까지 급증, 경기회복 기대감에 찬물을 끼얹었다.

상무부는 "지난해 11월 무역적자가 전달보다 48억8천만달러(13%)나 많은 4백1억달러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이같은 경기지표 악화로 미국 주가와 달러가치는 올들어 큰 폭으로 떨어지고 있다.

◇엇갈리는 전문가 진단=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 경제는 여전히 침체에 빠져있거나 더블딥에 빠질 우려가 있다"고 보도했다.

FRB도 지난 15일 공개한 '베이지북'에서 "소비가 미약하고 제조업 성장이 미흡할 뿐 아니라 고용창출도 부진해 둔화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혀 경기침체가 진행 중임을 시인했다.

이런 가운데 모건스탠리 딘 위터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스티브 로치는 "미국 경제가 이라크전 가능성과 소비심리 악화 등으로 '멀티딥(용어해설 참조) 증후군'을 보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 미국 경제가 역사상 독특한 패턴을 보이고 있다"며 그동안 경제를 지탱해온 개인소비가 위축되고 있고 기업들도 과거 버블 후유증으로 투자를 꺼리고 있어 장기침체 우려가 높다고 설명했다.

국제적인 금융투자가인 조지 소로스는 "조만간 미국 경제에 물가하락과 경기침체가 동시에 나타나는 디플레이션이 발생할 우려가 있으며, 이럴 경우 일본.독일에 이어 세계 3대 경제권이 모두 침체국면으로 빠져, 이들 경제권 의존도가 높은 개발도상국들이 상당한 악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에 비해 블룸버그통신은 지난달 29일 경제전문가 70여명을 대상으로 한 서베이를 인용, 경제가 일시적으로 다시 하락세를 보이고 있을 가능성은 있지만 다시 침체국면으로 들어선 것은 아니라며 "경기가 단기적인 침체 이후 상반기 중 2~3%의 건실한 성장세로 돌아설 것"이라고 진단했다.

통신은 "지난해 4분기의 성장 둔화는 미 서부해안 항만노조의 파업과 변동이 심한 자동차 판매에 의해 경제 실상이 왜곡됐기 때문이었다"고 지적하며 "지난해 12월 자동차 판매가 급증한 것과 올 1월 주택수요가 호조를 보인 것이 미 경제의 건강함을 보이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임봉수 기자

◇더블딥.멀티딥=더블딥이란 경기가 회복과정에서 다시 침체국면에 빠지는 것을 말한다. 멀티딥이란 침체와 회복이 단기적으로 반복되면서 결국 장기 침체에 이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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