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Report] 한국 앱 사는데 한국 돈 사절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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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가정주부 권모(38)씨는 지난달 애플의 애플리케이션(앱) 장터인 ‘앱스토어’에서 신용카드로 1.99달러짜리 유료 앱 2개를 구매했다. 구입 당시 환율은 달러당 1110원대. 대략 4400원 정도가 들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월말에 돌아온 명세서에는 이보다 10% 정도 많은 4800원이 나왔다. 권씨는 “문의를 하니 해외 신용카드 사용에 따른 수수료와 환전 수수료가 붙어 결제금액이 늘었다고 하더라”며 “많은 금액은 아니지만 수수료까지 부담해야 하는지는 몰랐다”고 말했다.

 외국 출장이 잦은 직장인 김모(34)씨는 최근 자신의 신용카드 정보가 도용당한 사실을 알았다. 구매하지도 않은 해외 앱에 대한 결제 청구서가 대량으로 날아온 것이다. 그는 금융감독원에 분쟁신고를 하려 했으나 국내 분쟁조정 절차를 이용할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해외 온라인 장터의 결제시스템이 한국에 등록돼 있지 않기 때문에 국내 소비자 보호 규정을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국내 스마트폰 이용자가 3000만 명을 넘어섰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게임·프로그램 등 다양한 앱이 사용자의 입맛을 사로잡은 게 한몫했다. 이 덕분에 국내 앱 시장 규모는 1조5000억원에 달할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대표적인 앱 장터인 애플 앱스토어와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는 원화로 결제할 수 없어 소비자의 불만과 불안감이 적지 않다. 앱 가격은 ‘원’이 아닌 ‘달러’로 표시돼 있고, 국내 전용 신용카드로는 구매도 할 수 없다. 구글 플레이스토어의 경우 국내 이동통신사를 통해 차후 정산하는 방식으로 원화 결제를 할 수 있지만 원화로 구매 가능한 앱이 제한돼 있다.

 결국 앱을 해외 쇼핑하는 셈이어서 해외 승인 수수료와 환전수수료를 별도로 내야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환차손도 감수해야 한다. 특히 거래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잘못됐을 때 보호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염려도 크다.

 이는 현행법상 외국 사업자에게는 원화 결제를 위한 전자결제대행(PG) 승인을 해줄 수 없기 때문이다. PG사는 온라인상에서 이뤄지는 거래 결제 정보를 수·발신하거나 정산을 대행하면서 온라인 결제를 중개하는 역할을 한다.

 현행 전자금융거래법은 PG 업무를 맡기 위해서는 금융위원회에 등록해야 하고, 그 주체는 한국 법인이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 PG사업 허가를 받으려면 결제 과정을 처리하는 데 쓰이는 사업자의 컴퓨터 서버가 국내에 있어야 한다.

 결국 앱의 원화 결제를 위해서는 애플·구글이 국내에서 PG사업 허가를 받아야 하고, 한국 내에 이를 담당할 자회사를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전 세계에서 장사를 하는 애플·구글이 상대적으로 시장 규모가 작은 한국에서만 별도의 사업체를 두기는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피해는 애꿎게 소비자에게 돌아가고 있다. 물론 결제 과정에서 승인·환전수수료 등으로 발생하는 비용은 소비자 개개인으로 볼 때 큰 금액은 아니다. 하지만 스마트폰 가입자 수가 계속 늘고 있고 앱 거래 규모도 급성장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전체 추가 비용 규모는 눈덩이처럼 늘어날 수 있다.

 신용카드로 앱을 구매했다가 문제가 발생할 경우에도 마땅히 구제책이 없다. 현재로선 소비자가 직접 해당 신용카드사의 해외네트워크를 통해 구제 절차를 밟아야 한다. 해당 사업자의 약관, 해당 국가 법령 등의 제약을 받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손해를 봐도 그냥 포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유명 앱 제작업체인 젤리버스의 김세중 대표는 “현재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앱을 사면 15분 이내에 구매를 취소해야 환불받을 수 있다”며 “애플·구글이 PG사업 허가를 받게 되면 원화 결제가 가능할 뿐 아니라 수수료도 줄고 환불도 쉽게 받을 수 있어 여러모로 소비자의 편익이 크다”고 말했다.

 구글코리아가 최근 국내 소셜네트워크서비스 이용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4명 중 3명(75%)은 앱 구매 시 신용카드를 이용하고 있으며, 대부분(97%) 달러가 아닌 원화로 결제하기를 희망했다. 상당수의 사용자가 원화 결제가 안 돼 불편을 겪었다는 게 구글코리아의 설명이다.

  외국의 경우 미국·일본은 자국 통화로 자유롭게 앱을 구매할 수 있다. 영국·호주는 허가제를 운영하고 있지만 한국처럼 규제가 까다롭지는 않다. 경우는 약간 다르지만 중국의 경우 애플·구글이 현지법을 수용해 위안화 결제 시스템을 갖췄다. 달러·유로·파운드·엔화는 물론 위안화로도 결제가 가능한데 원화만 ‘홀대’를 받고 있는 셈이다.

 이에 구글코리아는 국내 금융 당국에 PG사업자 승인을 신청했으나 국내에 서버가 있어야 하며 금융거래 정보를 저장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 등으로 승인이 거절됐다. 구글코리아 관계자는 “국내에 서버가 있어야 보안이 우수하다고 볼 수는 없다”며 “소비자는 물론 콘텐트 사업자들도 사업 기회 확장을 위해 원화 결제를 원하는데도 현행법이 현실을 못 쫓아가고 있는 느낌”이라고 꼬집었다.

 하지만 금융 당국의 입장은 다르다. 소비자의 편익 증대도 중요하지만 PG사업 승인은 결국 금융감독 ‘주권’과 연결되므로 신중히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외국 기업에 PG사업을 승인할 경우 정보 유출이나 전산 사고 등이 발생할 경우 대응이 만만치 않다. 사태 파악과 대책 마련을 위해 금융 당국이 개입해야 하는데, 외국에 서버를 두게 되면 들여다보기가 쉽지 않다.

 외국으로의 고객 정보 유출 가능성도 걸림돌이다. 국내 PG사는 직접적으로 신용카드 정보를 보유할 수 없다는 규정을 적용받지만 구글·애플은 결제 편의를 위해 신용카드 정보를 저장하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소비자 편익 측면에서는 PG사업을 허가하고 원화 결제를 활성화시키는 게 맞다”며 “그러나 이용자의 편의와 안전한 금융 거래를 위한 보안은 상충하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금융사고가 발생할 경우 감독 당국이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고 다른 국내 업체와의 형평성도 감안해야 하는 등 고려할 사항이 많다”고 덧붙였다.

 스마트폰·태블릿PC 등 모바일 환경이 급성장하고 안드로이드 기반의 ‘아마존 앱스토어’도 국내 진출을 준비하면서 원화 결제를 바라는 콘텐트 업체의 요구는 계속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결국 국가와 공간을 초월하는 새로운 온라인 생태계가 꾸려져 있는데, 국내 법규는 이와 따로 놀고 있다는 논란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 관계자는 “소액 결제만이라도 국내 카드로 지불이 가능하게끔 구글·애플과 지속적으로 접촉하고 있다”고 말했다.

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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