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문 앞 화단 밟고 또 밟고 … "배상 청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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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나현
사회부문 기자

지난 19일 오후 9시30분 서울 중구 대한문 앞. 쌍용자동차 농성장 철거 규탄 집회에 참석한 범국민대책위와 대학생 등 200여 명이 모여있었다. 집회를 마친 이들 가운데 20여 명이 갑자기 화단 안으로 들어갔다. 이들은 손에 플래카드를 든 채 민중가요를 부르거나 구호를 외치며 약 20여 분간 화단에서 나오지 않았다. 일부는 현수막을 설치하려다 경찰과 충돌하자 화단에 드러눕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 화단에 심어졌던 꽃은 이들에게 밟혀 뿌리까지 뽑히는 등 훼손됐다.

 이튿날 중구청은 화단을 훼손한 혐의에 대해 관련자를 형사고발하고 민사상 손해배상까지 청구하겠다고 밝혔다. 이 화단은 중구청이 지난 17일 1900만원의 예산을 들여 추가로 만들었다. 쌍용차 해고노동자 농성장 천막에 불이 나 그을린 덕수궁 돌담과 서까래를 복구하면서 설치했던 공사 가림막을 치우면서다. 중구청 관계자는 “문화재청의 요청에 따라 화단을 만들었고, 중구청이 관리 책임을 갖고 있다”며 “화단이 훼손되고 복원되는 과정이 되풀이된다면 세금만 계속 퍼붓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중구청 결정처럼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통해서라도 혈세 낭비를 막아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화단 훼손으로 인한 피해액은 얼마 안 될지 모르지만 물리적 충돌이 계속되면 시민들의 불편 등 피해액은 훨씬 늘어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화단 설치와 훼손이 되풀이되는 상황을 끝내기 위해서는 행정 당국이 책임자들에게 엄정한 민사적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 뉴욕시는 2005년 12월 뉴욕 맨해튼·뉴욕시 교통공사노조(TWU)가 연금 지급 문제로 전면 파업에 돌입하자 공공 근로자의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한 뉴욕주의 ‘테일러법’을 적용, 법원에 소송을 낸 바 있다. 법원은 하루 100만 달러씩 내라며 벌금형을 선고했다. 뉴욕 일대 백화점과 상인협회도 “크리스마스 쇼핑 시즌을 앞두고 파업으로 10억 달러의 손해가 발생했다”며 노조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내려 하자 TWU는 60시간 만에 파업을 철회했다.

 이창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는 “화단으로 인해 정당한 의사 표시가 제한됐는지에 대한 입장이 다를 수는 있지만 공공비용이 소비된 설치물을 훼손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강나현 사회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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