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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센병 상처 씻은 팔순·구순 생일잔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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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앞줄 오른쪽부터 홍영화·강복순·노복남·이향우·고귀한씨, 뒷줄 오른쪽부터 라자로돕기회 봉두완 고문과 전재희 회장, 성 라자로 마을 조욱현 신부. [김경빈 기자]
고 육영수 여사는 1971년 마을에 목욕탕을 지어줬다. 오른쪽부터 당시 영애인 박근혜 대통령, 육 여사. [사진 성 라자로 마을]

21일 오전 경기도 의왕시의 성 라자로 마을. 나이 든 한센병 환자 요양시설인 이곳에서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팔순·구순 합동 생일 잔치다. 현재 마을에 거주하는 한센병 환자는 54명. 정확하게는 한센병 병력자다. 완치됐기 때문이다. 그중 고귀한(스테파노) 할아버지 등 4명이 팔순, 노복남(아델라) 할머니가 구순 생일을 올해 각각 맞는다. 벚꽃 흐드러지게 핀 날을 택해 생일상을 함께 받았다.

 잔치는 마을 내 강당인 라자로의 집에서 열렸다. “강복순 할머니, 시집가셔도 될 정도로 아름다우세요. 홍영화 할아버지, 그 옆에 앉으셨으니 대박이네요.” 라자로돕기회 회장을 맡고 있는 전재희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축하 인사에서 너스레를 떤다. 생일 주인공들의 한복 자태를 칭찬하자 객석에서 웃음이 터진다.

 이날 행사에는 병력자 가족, 돕기회 회원, 마을을 운영하는 신부·수녀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몇 해 전까지 돕기회 회장을 지내다 지금은 고문을 맡고 있는 봉두완씨는 “40년째 이곳 환자들을 돕고 있는데 올해 처음으로 감동적인 드라마 같은 순간이 찾아왔다”고 말했다. “사람들의 이목을 피해 그동안 참석을 꺼리던 환자의 아들·딸들이 올해는 잔뜩 왔다”는 거였다. 마을 원장인 조욱현 신부도 “자녀분들이 많이 와 특히 감동적”이라고 했다. 그는 축사를 이어나가다 감정이 북받쳐 끝내 울먹거렸다.

 고귀한 할아버지는 이향우(아네스) 할머니와 동갑내기 부부다. 함께 병에 걸렸지만 이겨내고 나란히 팔순을 맞았다. 자녀 인사 순서에서 4남매 중 한 딸이 “엄마 아빠, 이쁘고 멋지세요. 구순까지 건강하세요”라고 축하했다. 고씨는 답사에서 “60년 전에는 꿈도 못 꾸던 일이다. 사회에는 끼니를 잇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데 우리는 너무 잘지낸다”며 “앞으로는 여러분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으로 여생을 마치려 한다”고 했다.

 라자로 마을은 1950년 미국 가톨릭 교회에 의해 세워졌다. 뜻 있는 사람들의 후원으로 시설이 하나씩 늘었다. 당시 ‘퍼스트 레이디’ 육영수 여사가 71년 목욕시설인 ‘정결의 집’을 짓기도 했다. 이 건물은 지금은 마을 관리부 사무실로 쓰인다. 봉두완씨는 “대통령 영부인이 관심을 보이자 당시 기업인들이 앞다퉈 마을 후원에 나섰다”고 회고했다.

글=신준봉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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