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파「우회 설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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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존슨」미 대통령의 특사로 지난달 22일 「워싱턴」을 떠나 월남을 「스타트」로 태국 호주 「뉴질랜드」등 「필리핀」을 제외한 월남 참전국들을 차례로 순방했던 「클리포드」·「테일러」 사절단은 마지막 「코스」인 우리 나라에 지난 2일 밤에 와서 약 24시간동안 체한, 한국정부 수뇌들과 일련의 회담을 가진 뒤 3일 밤에 말 한마디 없이 홀연이 떠나갔다.
이 사절단의 임무는 출발할 때부터 요란스럽게 띄워졌던 「증파 요청」이라는 관측기구의 탓도 있겠지만 군사 전문가인 「테일러」 장군과 정보전문가인 「클리포드」씨가 이끄는 사절단의 「팀·칼라」로 미루어 보아서 증파 설득에 목적을 둔 것으로 이해되었었다. 백악관도 이들에게 주어진 증파설득 사절이라는 별명을 한번도 공식으로 부인한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의 증파 설득 임무는 순방도중 태국 호주 「필리핀」등의 증파 거부로 처음부터 참전국들의 냉대를 받게 되었던 것. 한국 정부도 이들이 오기 전에 『미국은 증파를 요청해 오지 않을 것』이라고 『증파 요청을 하지 말아줬으면』하는 희망을 담은 피동적 표현으로 사실상의 증파 반대의사를 표시하기에 이르렀고 급기야는 『증파를 요청해 오더라도 논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좀더 능동적인 표현으로 증파 거론의 여지가 없도록 미리 쐐기를 박았었다.
이에 따라 이들 사절단의 증파 설득이라는 적극적인 의도는 당초와는 달리 이미 퇴색하기 시작했고 증파 「필요성」만을 인식시키는 보다 소극적인 의미로 후퇴해 버렸다는 게 중론이다.
『야구의 주전투수가 경기 초부터 상대방에게 구질을 파악 당해 전력 투구도 못해 본 채 연속 안타를 얻어맞은 격』(외무부 고위 당국자의 비유)이 된 이 사절단은 지난 2일 내한하자마자 『어떤 결정이나 교섭을 위해 온 것이 아니라』고 미리 그들의 성격을 스스로 밝히기에 이르렀고 박 대통령과의 회담에 앞서 최규하 외무장관을 예방한 자리에서도 『월남문제에 관해 한국 정부와 충분하고도 솔직한 의견 교환을 하고 한국의 조언을 듣고자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3일 상오 이들 사절단은 박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수뇌들과 일련의 회담을 갖고 월남 지원 문제를 협의했는데 그 결과는 『(1)「맥나마라」미 국방장관의 방월 결과와 「웨스트모얼랜드」 주월 미군 사령관의 전황 보고를 중심으로 한 월남정세 검토를 하고 (2)월남전의 성공적 수행을 위한 한국 정부의 조언을 듣고 의견을 교환했으며 (3)월남전의 조속한 종결을 위한 후방지원 문제가 많이 논의』된 것으로 발표되었다.
그러나 정부의 고위 소식통들은 미국의 「증파 의욕」이 그렇게 간단히 후퇴했으리라고 보지 않고 있으며 『이 사절단은 월맹이 지난 3월 「다낭」기지 습격 이후로 전력을 증강하고 있기 때문에 참전 연합군을 증강시켜야 한다는 「맥나마라」·「웨스트모얼랜드」 주장을 설명, 증파 필요성만은 은연중 「설득」했으리라』고 보고 있으며 『정부도 이를 어느 정도 납득』했으리라고 관측하고 있다.
그렇지만 한국 정부는 『연합군 증강은 납득했지만 지금 단계에서는 한국의 안전보장상의 이유와 국내 정국의 혼미, 그리고 국군장비 현대화, 3개 예비사단의 전투 사단화 등 14개 선행조건의 이행부진 등으로 인한 국민의 반대 여론을 무마시킬 수 없다는 점 등을 들어 증파를 할 수 없다』고 미국측을 「역 설득」했으며 미측은 이를 「재납득」했기 때문에 증파 문제가 구체적으로 거론되지 않았다는 것이 외교 관측통들의 유력한 관측이다.
그러나 증파 문제는 미국이 내년 대통령 선거에 앞서 월남전의 승기를 잡아 미국내의 반대여론을 무마시켜야 한다는 정치적 환경에 처해 있는 한 『오는 10월의 월남 참전국 정상회담 뒤인 연말께는 다시 구체적으로 논의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같이 한·미간에 「설득」과 「납득」이 오가는 사이에 한국측은 예비역 장병과 군속으로 구성되는 1만7천명의 후방지원 군수 용역단(공병·병참·경비)의 파월 문제에 매듭을 지을 것을 제의했고 이 문제에 「많은 의견교환」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한국측은 『어떠한 사전보장을 하더라도 현역병 증파는 어려우므로 이 용역단을 파월 함으로써 주월 전투병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해서 「증파와 동일한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주장, 계속 1억3천만「달러」의 재정부 지원과 월수당 4백「달러」지급을 요구했고 미측은 현역병 보다 10배에 가까운 재정적 부담에 역시 난색을 나타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소식통들은 『사절단의 성격상 이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는 못했으나 다만 의견의 접근을 보아 앞으로의 구체적인 문제는 외교경로를 통한 교섭으로 미루어졌다』고 말하고 있다.
후방지원 문제와 관련한 이같은 한국측 제의에 대해서 미측은 주월 한국군의 전술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 「메콩·델타」와 「캄보디아」국경선 등 격전지구에 투입하는 한국군의 재배치 문제를 들고 나왔으리라는 관측이 유력하게 나돌고 있으며 이 재배치 문제가 어떻게 한국측에 받아들여졌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으나 그 결과는 앞으로 단계적으로 현실화할 것이라는 게 외교 소식통들의 견해다.
아무든 이번 사절단의 방한은 당초의 증파 설득이라는 임무에서 벗어났으나 10월에 열릴 월남참전국 정상회담을 앞두고 참전국들의 의중탐색과 관련해서 한국 측과 사전접촉을 했고, 격의없는 의사소통을 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만은 일단 평가되어야 할 것 같다. <박석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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