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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字, 세상을 말하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19호 27면

“그대에게 금빛 술잔 권하니(勸君金屈巵)/ 가득 채운 술 사양 마시게(滿酌不須辭)/ 꽃피면 비바람 많은 법이고(花發多風雨)/ 세상살이 이별로 가득 차 있네(人生足別離)”
당(唐)나라 방랑시인 우무릉(于武陵·810~?)의 시 ‘권주(勸酒)’다. 후반 두 구절이 사뭇 감상적이다. 꽃이 화려해도 비바람을 겪은 결과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삶이 이별의 아픔 속에서 성장하듯, 인생에 좌절과 시련은 늘 따라 다니니 일희일비(一喜一悲) 말라는 시인의 인생관이 들리는 듯하다. 이 구절은 지금도 ‘호사다마(好事多魔)’의 시적 표현으로 애용된다. 번역도 창작 못지않다. “꽃에 폭풍이란 비유처럼, 이별만이 인생이다”란 일본의 소설가 이부에 마스지(井伏鱒二·1898~1993)의 번역은 유명하다.
“꽃이 추위에 늦게 피니 새도 게을리 운다(花寒懶發鳥慵啼)/ 고삐 푼 말에 올라 한가히 거닐다 보니 해가 저무네(信馬閑行到日西)/ 오지 않은 봄을 찾는 심사 어디에 의지할까(何處未春先有思)/ 위왕지 제방의 버드나무는 아직 힘이 없구나(柳條無力魏王堤).”
더디 오는 봄을 노래한 백거이(白居易·772~846)의 ‘위왕제(魏王堤)’다. 뤄양(洛陽)의 위왕지(魏王池)는 당 태종이 4남인 위왕 태(泰)에게 하사해 붙은 이름이다. 뤄양은 북방의 도시다. 꽃은 더디게 피고 새는 게을리 울며 버들가지는 힘이 없었다.
강남은 달랐다. 백거이는 ‘강남을 그리워하며(憶江南)’를 지어 “해 뜨는 강가의 꽃은 불보다 더 붉고(日出江花紅勝火)/ 봄이 오는 강물 색은 남색 마냥 푸르다(春來江水綠如藍)”라며 남녘의 활기찬 봄을 추억했다.
3월 마지막 일요일 흐드러지게 핀 왕벚나무가 장관이던 진해 여좌천으로 벚꽃놀이를 다녀왔다. 서울 벚꽃은 이제야 절정이다. 4월 눈보라를 동반한 꽃시샘이 유달랐던 탓이다. 북녘에서 불어닥친 위협도 ‘화발다풍우’ 분위기에 일조했다. 핵과 신종 플루 소식에 새로 들어선 한국과 중국 지도자의 첫 봄 나기가 힘겹다. 미국에선 12년 만에 대형 테러까지 터졌다. ‘봄에 사흘 맑은 날이 없다(春無三日晴)’라고 했다. 결국 이 봄도 지나간다.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라는 옛 유행가 가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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