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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테러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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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16일(현지시간) 보스턴에서 열린 폭탄테러 희생자 추모식 행사에서 시민들이 오열하고 있다. 전날 발생한 테러로 3명이 숨지고 176명이 다쳤다. [보스턴 로이터=뉴시스]

보통 사람도 마음만 먹으면 세계를 상대로 테러를 벌일 수 있는 시대. 4·15 미 보스턴마라톤 테러를 통해 드러난 우리 시대 일면이다. 핵탄두 미사일이나 수십만 병사가 아니라 6L짜리 압력솥 하나로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과 뇌리를 찢어놓을 수 있다.

 이번 보스턴 폭탄 테러에 이용된 폭발물은 압력솥으로 만든 사제폭탄으로 확인됐다. 이 압력솥 폭탄은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무장세력, 알카에다 등 국제 테러조직이 즐겨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미 수사 당국은 이번 사건을 국제 테러리스트와 결부시키는 데 신중을 기하고 있다. 폭탄 제조법이 인터넷에 올라 있어 누구나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스턴마라톤 테러 희생자들. 왼쪽부터 식당 매니저인 크리스털 캠벨(29·여), 8세 소년 마틴 리처드, 중국 유학생 뤼링쯔(呂令子·여). [AP=뉴시스]

 최근엔 설계도를 입력하면 입체 물품을 찍어내는 3D프린터 덕에 총기도 제작할 수 있다. 코네티컷주 샌디훅 초등학교 총기 사건에 사용된 것과 같은 AR-15 반자동 소총의 핵심 부품을 20여 분 만에 만들어낸다.

 급속한 기술발전과 인터넷을 통한 정보 유통은 개인들의 DIY(Do It Yourself) 공격을 가능케 만들었다. 미 국토안보부 2010년 보고서에 따르면 1970년 미국 내 극단주의자들의 폭력행위(테러 포함) 중 개인이 주체인 사례는 전체의 6.5%에 불과했다. ‘외로운 늑대(lone wolf)’형 테러범 티머시 맥베이의 오클라호마시티 테러 사건 이후는 확 달라졌다. 95년부터 2010년 사이 개별적 테러는 전체의 33%로 늘어났다.

 타임 인터넷판은 16일 이번 사건이 저강도의 ‘리더 없는 테러’ 특징을 보인다고 지적했다. 조잡한 파괴력의 폭발물을 동원해 미디어로 중계되는 대중 행사를 노렸다. 사망자가 3명에 그쳤다는 점에서 살상력보다 대중의 공포를 극대화하는 테러리즘 자체에 집중했다. 사망자에 비해 부상자가 176명으로 압도적으로 많은 점도 특징이다.

 군사전문지 스트랫포는 미디어를 통해 공포의 확산을 노리는 이런 테러를 ‘극장식 공격(theatrical attacks)’이라고 규정했다. 보스턴마라톤처럼 보안 검색이 상대적으로 덜한 ‘소프트 타깃’이 대상이다. 2004년 동남아시아 쓰나미 때 22만7000명이 죽었지만 우리 기억엔 사망자가 3000명에 못 미치는 9·11테러가 더 생생하게 남아 있다. 알카에다 등 테러조직이 실패한 테러마저 성과로 강조하는 것도 이러한 테러의 프로파간다적 특성 때문이다.  이번 테러가 미국 극우주의자나 아나키스트 등 내부의 소행으로 밝혀질 경우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대테러 정책은 심각한 고민을 안게 된다. 압도적 군사력을 통한 ‘충격과 공포’(이라크전 작전명)로 퇴치할 수 없는 위협이다.

 최근 기승을 부리는 사이버테러도 개인들의 테크놀로지 테러라는 점에서 군사적 퇴치가 불가능하다. 익명 소통이 가능한 인터넷 시대는 국경을 넘은 개별자들의 느슨한 연대를 강화시킨다.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 자유주의 정부 앞에 냉전·대량살상무기 위협을 넘어 소수 테러와의 상시 싸움이라는 과제가 놓였다.

강혜란·유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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