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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쿨 졸업생의 7급 공무원 지원은 무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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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기환
사회부문 기자

“아프지만 고맙습니다. ‘마녀사냥’ 때문에 불편했는데 용기 내서 지원하렵니다.”

 17일 오전 로스쿨 1기 졸업생 A씨(28)로부터 걸려온 전화다. 그는 최근 부산시청에서 낸 7급 공무원(변호사) 채용 공고를 두고 로스쿨생 사이에서 지원자 ‘신상털기’ 논란이 한창이라고 제보한 사람이다. 5600여 명이 가입한 국내 최대 로스쿨생 인터넷 카페 ‘로이너스’에서 벌어진 일이다. 본지는 일부 로스쿨생이 “‘7급 공무원이란 ‘썩은 떡밥’을 무는 지원자는 실명을 털어야 한다”는 식의 행태를 보인다고 지적했다. (중앙일보 4월 17일자 13면)

 이 기사에 대해 “예비 법조인답지 못하다”는 내용의 댓글 500여 개가 쏟아졌다. 하지만 일부 로스쿨생은 “기자의 신상을 털자”며 비난하고 나섰다.

 로스쿨생들이 들끓은 것은 그들이 변호사 자격증을 따는 데 들인 노력과 돈에 비해 7급 대우가 너무 낮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7급 공무원에 지원하겠다는 A씨가 유별난 걸까.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에서 6급 변호사 2명을 채용했을 땐 56명이 몰렸다(경쟁률 28대1). 역시 6급 채용 공고를 낸 세종시·춘천시에선 각각 10대1, 22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참고로 일반직 7급 공무원의 올해 공채 경쟁률은 113대1이다.

 부산시 측은 “7급 대우가 정당하다고 판단해 채용 공고를 냈는데 왜 지원자의 자유까지 침해하려 드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심지어 로스쿨에서도 이를 반대하지 않는다. 이기우(57) 인하대 로스쿨 원장은 “직급이 낮아진 것은 달리 생각해 보면 변호사들의 공직 진출 저변이 넓어진 것”이라며 “법률 전문가들이 공공영역에서 전문성·책임성을 다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로스쿨 제도의 취지”라고 말했다.

 최근 로스쿨생에게 ‘불편한’ 소식이 쏟아졌다. 9일 로스쿨 취업박람회엔 로스쿨생 1500명이 몰렸다. 16일엔 지난해 검사로 임용된 로스쿨 1기 졸업생 중 SKY(서울·고려·연세)대 출신이 86%로 사법시험 시절(64%)보다 높아졌다는 기사도 나왔다. 같은 날 서울지방변호사회는 지방대 로스쿨 졸업생이 서울에서 1년 동안 개업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법조 기자로서 로스쿨생의 취업난을 안타깝게 보고 추적해왔다. 로스쿨생 대부분이 묵묵히 법조인을 꿈꾸며 실력을 갈고닦는 모습도 지켜봤다. 하지만 공급이 많아지면 ‘몸값’이 낮아지는 건 세상의 이치다.

 7급을 지원하든, 무급 자원봉사직을 선택하든 그건 로스쿨 졸업생 모두에게 주어진 자유 권한이다. 예비 법조인이라면 당연히 헌법(제15조)에 보장된 직업 선택의 자유를 존중해야 할 것이다.

김기환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