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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은 떡밥' 7급 공무원 지원 변호사 신상 털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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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7급 공무원은 변호사 자격증씩이나 필요한 자리가 아니다.”

 “‘썩은 떡밥’을 무는 지원자는 신상을 털어야 한다.”

 부산시에서 변호사를 7급 공무원으로 채용하는 것을 두고 로스쿨생들의 인터넷 카페 ‘로이너스(www.lawinus.net)’에 올라온 글들이다. 로이너스는 로스쿨생(수험생) 5600여 명이 가입한 최대 규모 카페다. 등록금 영수증을 내야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을 만큼 폐쇄적이다. 이 카페 게시판에는 최근 7급 채용과 관련한 비난글 수십 개가 올라왔다. 16일 현재 글마다 조회 수가 200~1000여 건이 기록됐고, 댓글이 수십 개씩 달릴 정도로 찬반 논쟁이 활발하다.

 계기는 부산시청이 12일 낸 채용공고다. 공고엔 ‘행정 전문성 향상을 위해 변호사·공인회계사 자격 소지자 1명씩을 행정직 7급 공무원으로 채용한다’고 돼 있다. 로이너스에선 즉각 “지원자는 법조계 전체를 욕먹이는 사람” “지원하기 전에 로스쿨 선후배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숙고하라” “변호사 자격증까지 따놓고 시청에서 6급 공무원에게 커피나 타며 인생 보내고 싶다면 안 말린다”는 등의 비난글이 줄줄이 올라왔다. 문제는 채용을 보이콧(거부)하거나 지원자 신상을 공개하자는 등 과격한 주장들도 여과 없이 올라와 있고 이런 주장에 공감을 표시하는 이도 적지 않다는 점이다. “지원자는 사진과 실명을 공개하는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란 내용의 글은 1000여 명이 조회했고 옹호 댓글 20여 개가 달렸다.

 한 대학의 로스쿨 카페에선 7급·경위(경찰)·일반직 지원자 명단을 각 로스쿨에 공개하자는 논의까지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지원은 개인의 자유” “변호사 자격증만으로 대우받길 원하는 로스쿨생의 이기심”이란 식의 글도 올라왔지만 소수였다. 부산시에선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부산시 관계자는 “다른 지자체에선 이미 6급 공무원으로 선발한 바 있고, 선발 과정에서 자격 미달로 떨어진 로스쿨생도 많다”며 “7급 대우가 정당하다고 판단해 공고를 냈는데 왜 지원자의 자유까지 침해하려 드느냐”고 말했다.

 과거 로이너스에선 로스쿨 졸업생에 대한 대웅제약의 일반직 직원 채용공고, 국가인권위원회·인천시·조달청의 6급 채용공고가 났을 때도 보이콧 움직임이 있었다. 최근엔 로스쿨생에게 불편한 주장을 쏟아내고 있는 위철환(55)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의 로스쿨 강연 거부운동도 일었다. 한 로스쿨생은 “취업이 어려운 건 사실이지만 예비 법조인답게 균형 있는 판단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로스쿨생들이 민감해진 건 취업난 때문이다. 유기홍(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지난해 로스쿨 1기 졸업생의 취업률은 81.7%다. 로스쿨생들은 전국 단위 학생협의회를 조직해 기자회견을 여는 등 불리한 여론에 조직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김명기(49) 로스쿨협의회 사무국장은 “변호사 자격증이 곧 능력인 것은 아니다”며 “로스쿨 설립 취지대로 각자의 능력·적성에 따라 법조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은 어디라도 찾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기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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