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동 vs 자동 … 베네수엘라 재검표 갈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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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 대선 야권 연대 후보인 엔리케 카프릴레스의 지지자들이 15일(현지시간)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경찰과 맞서고 있다. 카프릴레스와 지지자들은 이날 베네수엘라 선관위가 공식 발표한 대선 결과를 수용할 수 없다며 수동 재검표를 요구하고 나섰다. [카라카스 로이터=뉴시스]

근소한 표 차이가 베네수엘라 정국을 태풍 속으로 몰아넣었다. 15일(현지시간) 베네수엘라 선관위(CNE)는 니콜라스 마두로(51)가 26만2000표 차이로 승리했다고 재확인했다. 마두로는 전날 투표 시스템의 전자 재검표를 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야권 연대 후보인 엔리케 카프릴레스(41)가 주장한 수동 재검표는 거부했다.

 베네수엘라는 지방 선거 등 각종 선거에서 전자 투·개표 시스템을 쓰고 있다. 투표 종료와 함께 결과가 집계되기 시작해 약 3시간 후 전체를 개함하지 않고도 선거 결과를 알 수 있다. 카프릴레스는 선거 시스템상에서 정보가 조작됐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투표 정보를 모두 인쇄해 수동으로 세자고 주장하고 있다. 마두로와 CNE는 수동 재검표는 하지 않겠다고 못 박았다.

 수동 재검표가 없다는 발표에 카프릴레스는 지지자들에게 항의 시위를 호소했다. 선거 결과 발표 이틀째인 15일 수도 카라카스 주요 거리엔 카프릴레스의 지지자들이 모여 냄비를 두드리며 항의하고 있다고 AP통신은 보도했다. 전날 새벽엔 자동차 타이어에 불을 지르며 경찰과 대치하는 등 긴박한 상황도 연출됐다. 일부 지역에선 극단적 차베스주의자들이 허공에 총을 쏘며 시위대에 해산을 요구하기도 했다. 정부 관계자들은 “카프릴레스가 쿠데타를 선동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항의 시위가 격화되자 카프릴레스는 “감정보다는 이성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수요일(17일) CNE 앞에서 평화 행진을 하자”고 제안했다.

 독립 기구인 CNE의 공정성도 도마에 올랐다. CNE는 시민사회, 학계 등이 추천한 다양한 정치 성향의 위원 5명으로 구성된다. 하지만 선거 때마다 친정부 성향이라는 야권의 비난을 받아왔다. 이번 선거에서는 5명 중 비센테 디아스 위원이 수동 재검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지만 티비사이 루세나 위원장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선거 결과 발표 후 24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기습적으로 당선을 선언한 것에 대한 비난도 거세다.

 재검표 논쟁으로 베네수엘라의 혼란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절반의 승리만 거둔 마두로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그에게 “정치적 연옥이 기다리고 있다”(엘 파이스)는 평가다. 반면 이번 대선의 실질적 승자인 카프릴레스의 위상은 한 단계 올라갔다. 지난해 10월 차베스 대통령과의 대결 때보다 67만 표를 더 얻었다. 만 40세의 나이에 벌써 두 번의 대선 경험을 쌓은 그는 오토바이를 타고 빈민가를 누비며 지지층을 확장해 왔다.

전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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