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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는 금값 황금시대 … 원자재값 '수퍼 사이클' 끝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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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구리·팔라듐 정도가 희망적. 유가는 중립. 나머지는 흐림.’

 국제 원자재 시장에 중국이 드리운 그림자는 짙고도 길었다. 원자재에선 당분간 수익을 내기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15일(현지시간) 국제 상품시장에서 원자재 가격이 줄줄이 하락한 뒤 국내 증권사 원자재 담당 연구원들이 내놓은 반응이었다. 중국 경제성장 둔화로 원자재 수요 역시 가파르게 늘기는 어렵다는 이유였다. 세계 최대 원자재 수요처로 떠오른 중국의 위상을 새삼 실감하는 대목이다.

 최근 투자자들이 큰 관심을 둔 금부터 그랬다. 인도 다음가는 귀금속 수요처인 중국이 주춤할 수밖에 없어 약세일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이틀 동안 13% 하락할 정도로 급락해 잠시 반등할 수도 있겠지만, 더 내려갈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그렇잖아도 금에 대해서는 ‘연말 미국 양적완화 축소 → 달러 강세 → 금값 약세’라는 시나리오가 힘을 얻던 터다. (중앙일보 4월15일자 B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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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한금융투자 김종철 연구위원은 “국제 금값이 내려가더라도 1250~1300달러가 마지노선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광산업체들의 금 생산 원가에 근접하는 데다 ‘이만하면 싸다’고 느낀 투자자들이 다시 금을 사기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은 역시 금과 비슷한 운명으로 분류됐다. 지금까지 은값은 금과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금값이 뛰면 상대적으로 싼 은 상장지수펀드(ETF)에 소액 투자자들이 몰려 이런 양상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은은 ‘가난한 자의 금(the poor’s gold)’이라고도 불린다.

 같은 귀금속이지만 백금과 팔라듐은 좀 달랐다. 귀금속과 투자용으로서뿐 아니라 산업 수요가 있어서다. 백금은 경유, 팔라듐은 휘발유 차량의 배기가스 정화장치에 쓰인다.

삼성증권 임효재 연구원은 “중국 성장세가 예전만 못하다지만 경유차를 많이 쓰는 선진국보다는 휘발유 차량 위주인 신흥국 경기가 낫다”며 “신흥국의 ‘마이 카’ 붐과 연관된 팔라듐은 귀금속 중에서 가장 유망한 투자 대상”이라고 말했다.

 철강을 비롯한 일반 금속류 역시 중국 소비 둔화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철강은 특히 “부동산을 잡겠다”는 중국 정부의 강한 의지에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됐다. 부동산·건설경기가 위축돼 철골재 신규 수요가 전 같지 않으리란 소리다.

 구리도 부동산 규제의 영향을 받기는 마찬가지다. 건물 난방용 파이프와 전기배선용으로 많이 쓰인다. 하지만 여기엔 다른 변수가 있었다. 현대증권 손동현 연구원은 “구리 값이 떨어지면서 전 세계 구리 생산업체들이 최근 들어 감산을 선언했다”고 전했다. 최근 칠레에서는 광산 노동자들이 임금 문제를 들어 파업을 선언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올 2분기에는 전 세계 구리 생산량이 수요에 23만t 못 미칠 것이라는 추정이 나오고 있다.

 국제유가는 약간 상황이 달랐다. 우선 곧 ‘드라이빙 시즌’에 진입한다. 미국과 선진국들이 휴가철을 맞아 연료 수요가 대폭 늘어나는 시기다. 게다가 사우디아라비아를 위시한 중동 국가들이 감산해 공급이 줄었다. 중국 영향을 충분히 상쇄할 정도의 여건이다. 우리투자증권 강유진 연구원은 “다만 현재 미국에 원유 재고가 충분해 단기적으로 유가는 배럴당 90달러 선에 머물 것”이라고 전망했다.

 농산물은 유동적이었다. 동양증권 이석진 연구원은 “현재까지는 날씨가 좋아 가격이 안정 또는 하락세를 보이고 있으나 향후 가격은 기상 이변이 일어나느냐 마느냐에 좌우될 것”이라고 했다.

 하이투자증권 박상현 투자전략팀장은 “전체적으로 2000년대 초반부터 10년 넘게 계속된 ‘원자재 수퍼 사이클’이 마침표를 찍을 것 같다”고 밝혔다. 그렇잖아도 원자재 가격이 10년 이상 상승세를 이어오며 슬슬 랠리를 마감할 것이란 예상이 번지던 차에, ‘중국 성장 둔화’가 결정적으로 원자재 가격 방향 전환 역할을 할 것이라는 의미다.

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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