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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쓰레기 2024년 완전 포화 … 답 못 찾으면 원전 스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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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부산시 기장군 장안읍에 있는 신고리원자력발전소 1, 2호기는 18개월마다 핵연료의 3분의 1을 교체한다. 원전 한 곳에 연료봉 177다발(74t)이 들어간다. 핵 연료 가운데 가장 많이 연소된 3분의 1(약 25t)을 빼내 저장수조로 옮기고 그 자리에 새 연료를 넣는다. 25t에 불과한 사용후 핵연료(고준위폐기물)를 10m 남짓 떨어진 저장수조로 옮기는 데 무려 10일이나 걸린다. 방출되는 방사선이 많은 데다 모든 작업을 물 속에서 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염물질의 방출을 막기 위해 사용후 핵연료는 물속에서 처리한다. 원전의 격납 건물 내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안전을 우려해 오래 머물지 않고 교대작업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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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은 이런 방식으로 사용후 핵연료를 심혈을 기울여 처리한다. 멀리 보내지도 않는다. 원전별로 바로 옆에 있는 저장수조에 넣어둔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해마다 23개의 원전에서 700t가량의 사용후 핵연료가 쏟아져 나오지만 저장고는 이미 70%가 넘게 채워졌다. 이런 추세라면 고리원전 2016년, 월성 2018년, 영광 2019년, 울진은 2021년에 각각 포화상태를 맞게 된다. 벌써 이미 몇몇 원전은 용량을 넘어 다른 곳으로 옮겨 저장하고 있다.

 정윤창 한국수력원자연 안전처 차장은 “일부 원전의 사용후 핵연료는 특수 용기에 넣어 인근 원전의 저장수조로 옮기고 있다”고 말했다. 저장 간격을 촘촘히 해 더 저장한다고 해도 한국과 미국의 원자력협정이 개정되지 않으면 사용후 핵연료 저장시설은 2024년에 완전 포화상태가 된다. 대안을 찾지 않으면 원자력 발전의 중단이 불가피하고 이는 블랙아웃(대정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사용후 핵연료의 94.6%는 다시 쓸 수 있는데도 미국의 반대로 한국 원전산업이 어려움에 빠져 있는 셈이다. 한국은 호주 등에서 우라늄 정광(精鑛·옐로케이크)을 4000여t 수입한 후 이를 외국 업체에 보내 원료로 쓸 수 있게 농축하고 있다. 이 비용으로 들어가는 돈도 매년 9000억원에 달한다.

 문제는 더 있다. 원전 옆의 수조에 저장하는 것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사용후 핵연료 관리 방식은 세 단계가 있다. 일단 원전 내 수조에 임시로 저장한다. 사용후 핵연료라도 열이 남아 있기 때문에 보통 1~5년간의 냉각기간이 필요하다. 그런 다음 이를 물 또는 콘크리트 속에 넣어 창고 같은 곳에 50년간 보관한다. 이를 중간저장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지하 500m 이하의 땅속에 넣어두는 최종폐기 단계가 있다.

 하지만 한국은 1단계인 임시저장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그동안 정부가 방사능폐기물처리장 설치를 추진했지만 지역 주민의 극심한 반대에 부닥쳐 번번이 무산되곤 했다. 1990년 안면도에서 1만여 명의 주민이 반대운동을 벌여 과기처 장관이 사퇴했다. 2003년 부안 후보지로 선정되자 주민과 경찰이 충돌해 700여 명이 다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정부의 고민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방폐장 선정을 공론화해야 하지만 자칫 국론 분열만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이달 초 국회 업무보고에서 “2014년까지 사용후 핵연료 관리방안을 건의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중간저장 시설을 건설하는 데 공론화(1년6개월), 부지 선정(3년), 건설(7년) 등 11년가량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지금 당장 공론화를 시작해도 임시저장 시설의 포화상태에 이르는 2024년까지는 중간저장 시설의 건설이 불가능하다. 김정화 산업부 원전환경과장은 “방폐장 선정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라 결정이 쉽지 않다” 고 말했다.

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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