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출신 재일동포들 30년째 고향에 나무 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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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30일 오전 경남 고성군 고성읍 수남리 남산공원. 서투른 한국어를 주고받으며 나무를 심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높이 2m 정도의 느티나무를 구덩이에 넣고 흙을 채운 다음 발로 다지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할당된 나무를 다 심은 사람들은 "공기가 너무 달콤하다"며 감개무량한 듯 심호흡을 하기도 했다. 이들은 올해로 30년째 고향을 찾아 나무를 심는 경남 출신 재일동포다. 올해는 369명이 왔지만 해마다 300~500명씩 식목일(4월 5일)을 전후해 고국을 찾고 있다. 일본 도쿄(東京).히로시마(廣島).야마구치(山口).지바(千葉) 등 여덟 곳에 흩어져 사는 이들은 지역별로 모여 함께 대한해협을 건너오고 있다.

이날 심은 나무는 느티나무.반송(盤松) 등 11종 8000여 그루. 나무값 1억2000만원은 재일동포들이 십시일반으로 부담했다.

이들이 처음 고향을 찾아 나무를 심은 것은 1975년. 도쿄 경남도민회를 결성한 30여 명의 동포가 고국에 뜻있는 일을 하자고 의견을 모으면서부터다. 그해 4월 30여 명이 건너와 공무원들과 함께 경남 양산의 야산에다 리기다 소나무 4000그루를 심은 것을 시작으로 올해까지 17만여 그루의 나무를 경남도 내 곳곳에 심었다. 나무값만도 11억7000만원에 이른다.

75년부터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찾았다는 이종국(80.도쿄 거주)씨는 "초기에는 '넥타이라도 풀어주고 가라'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고국이 너무 못 살아 돌아가면 가슴이 아팠지만 지금은 그때의 어려움을 모르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초창기에는 동포 1세들이 많았으나 지금은 2~3세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손자와 딸 등을 데리고 온 동포도 20여 명쯤 됐다.

막내딸(28)과 함께 온 도쿄 경남도민회 김소부(60) 회장은 "나무를 심는 것이 아니라 고향에 내 혼을 심는 기분으로 해마다 찾고 있다"고 말했다. 레스토랑과 빠찡꼬 업소 10여 곳을 운영하며 2000여 명의 직원을 두고 있다는 김씨는 해마다 나무값으로 수천만원씩 내놓고 있다. 1000여 명에 이르는 회원들은 형편에 따라 고국 기념식수비 명목으로 1인당 연간 7만~3000만원의 회비를 내고 있다.

문춘자(65.여.도쿄 거주)씨는 "처음엔 한국어를 거의 못했으나 나무 심으러 오면서 한국어를 배워 지금은 잘한다"고 말했다.

손녀(12)를 데리고 온 김영화(58.여.도쿄 거주)씨는 "독도 문제가 다시 불거지는 것을 보고 손녀에게 한국 혼을 심어주고 싶어 왔다"고 했다.

경남도는 동포들의 뜻을 기리기 위해 창원시 경남도청 앞 중앙로를 99년 '도쿄 도민의 거리'로 지정하는 것을 시작으로 진주.김해.진해.합천.산청 등 12곳의 도로에 경남도민회가 있는 일본 지명을 붙여 '재일 도민의 거리'로 부르고 있다.

고성=김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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