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태 수습의 관건은 「성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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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국은 그대로 공전을 거듭하고 있다. 난국 수습의 전기를 마련할 것으로 보였던 박 대통령의 특별담화에도 불구하고 사태는 여전히 혼미와 답보 속에 있다. 각계각층의 발언이 새롭게 집약되어 나오고 있으나 정치는 변함없는 무중력상태에서 진전을 기록하지 못하는 채 공전만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방향타마저 결한 듯한 이 질식할 정국의 「카오스」는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국가의 활력이 거세되고 민주주의의 기능이 마비된 이 답답한 정국은 끝내 파국을 향해서만 치닫고 말 것인가.
경제인들마저 여·야 지도자들과 접촉하여 시국 수습에 일조가 되고자 나선 이 때, 정작 책임을 져야 할 정치인들은 계속 입을 다물고 행동을 제하고만 있을 것인가.
우리는 무엇보다도 이 답답하고 소모적인 정국경색의 타개를 위해 모든 여·야 정치인들에게 사태 수습을 위한 「성의」의 발로를 촉구해 두는 바이다.
이미 단번에 사활을 결정하는 투쟁의 단계는 지났다.
지금은 어느 편에서도 현실적 안목이 필요하고 사태 해결에 대한 현실적 접근의 필요를 외면할 수가 없는 때이다. 10년 뒤의 미래를 보는 눈을 갖춘 자만이 정치가라고 비로소 일컬어진다 하거니와 10년 후는 고사하고 바로 발목이라도 제대로 보아야할 정칙의 눈이 아쉬운 때가 지금 이 때이다.
그래서 우리는 현실적 안목의 보지와 현실적 접근의 표시를 촉구하는 것이다.
아주 솔직하게 이야기를 나누어보자. 지금과 같은 상황 아래서 어느 누가 투표함에의 울분을 말끔히 불식할 수 있을 것인가. 신뢰란 잃기는 쉽지만 얼마나 회복하기 어려운 것인가.
또 오직 폐쇄의 담을 쌓고 있는 야당의 경우도 그렇다. 지금 어느 누가 대통령 중심제 정체 아래서 엄연히 민주주의 절차를 걸쳐 제6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박 대통령의 향후 4년간의 집권을 비혁명적 방법으로 억제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국회의석이 몇 개쯤 변경되는 한이 있더라도 향후 4년의 한국정치의 골격은 공화당에 의해 형성되는 것임을 어느 누가 또한 부정할 것인가. 그렇다면 해답은 명료하다. 이제는 현실에 애써 눈을 감으려는 풍습을 타파하면 될 것이요, 그 기반 위에서 허장성세를 버리고 성의를 다하기만 하면 될 것이다.
부정지구의 공동조사, 선거제도 개선을 위한 토론, 그 어느 것이든 좋다. 지금은 도저히 되지도 않는 형식적 주장에 얽매여 스스로 질식을 자초할 것이 아니라 바로 그 명분의 함정을 비켜 가는 용기가 필요한 때다.
위에서도 지적했지만 힘과 힘이 부딪쳐 승부를 겨룰 때는 이미 지났다. 이제는 사태 수습을 위한 행동의 개시만이 남았다. 여가 엄정한 자가 숙정의 성의를 계속 진실하게 표시하고 야가 지극히 비현실적 명분의 벽을 뛰어넘어 올 때, 정국을 뒤덮었던 혼미는 마침내 사라질 것이다.
전면적 정치불신이란 가공할 물결이 저 멀리서 파도쳐 오는 듯한 이 때, 다시 한번 여·야 정치인들에게 그 「성의」의 발현을 촉구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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