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사의 취재 전|이스라엘군의 전열을 따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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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이스라엘」과 「아랍」 대전을 취재, 보도키 위해서 11일 현재로 「이스라엘」 당국에 등록된 외국특파원 수는 1백50명, 수일 내로는 수백 명 선에까지 불어날 듯. 군 보도반은 「이스라엘」 신문인협회 회관인 「소콜로·하우스」에 그 본부를 펴고 동분서주, 세계 각 국에서 모여든 일간·주간·TV 및 방송기자들과 함께 좌충우돌.
기자가 받은 종군 기자증의 번호는 1천9백 번·「헤브라이」어를 알고 「텔아비브」에 5개월을 체재했다는 여덕으로 당직장교들이 좀 더 친절히 굴자, 어떤 특파원은 자신의 한국 취재경험을 앞세우며 이곳저곳 현지의 여행사정을 무척 추근추근 묻고 따랐다.
「이스라엘」 당국의 외국기자들에 대한 대접이나 편의제공 등은 전례 없이 그 친절도가 극진하다. 지난 11일 저녁은 「오키스트러」의 초대권을 배부하는 등, 하루 1회의 기자회견을 빠짐없이 주선하고 전황 발표시간엔 몇 시간 전의 전투장면을 생「필름」으로 상영하는 정도의 신속성까지 베풀고 있다.
또 하나의 전쟁은 보도검열관과의 대립, 때론 「케이블」 송고의 절반이 깎인 예도. 회관 앞엔 「포린·프레스」를 크게 써 붙인 차량들이 수십 대, 먼지투성이로 땀에 젖은 작업복을 입은 외국기자들이 들락날락, 오랜 시간 뒤에 4개 지역으로 종군여행이 결정, 기자는 「가자」지구와 「시나이」반도의 비행편을 신청했으나 지원자의 신청쇄도로 12일 약 30명의 TV·「라디오」 기자들과 함께 「버스」편으로 가게됐다.
특히 이번의 군 보도반 활동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스라엘」군의 당직장교나 공보장교들이 모두 8 내지 9개 국어를 유창히 구사하는 일이었다. 【텔아비브=안재훈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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