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성 난청, 보청기 잘 안들리면 만성질환 의심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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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근 이비인후과 난청클리닉 원장이 보청기를 사용해도 잘 듣지 못하는 노인성 난청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사진 김성근 이비인후과 난청클리닉]

#3년 전 노인성 난청으로 진단받은 최미영(가명·여·74·인천시 남동구)씨. 양쪽 귀에 보청기를 착용했다. 하지만 기대보다 소리가 또렷하게 들리지 않았다. 어느 순간 갑자기 소리가 작게 들리고 울리기 시작했다. 보청기 이상으로 생각해 기계만 조정했다. 이후 상대방의 얼굴을 마주하지 않으면 대화가 힘들었다. 며느리들이 웃으며 얘기하면 자신을 흉보는 것 같았다. 일상생활이 힘들어 우울증 약을 복용했다. 최씨는 최근 난청을 전문으로 보는 의료기관을 찾았다. 검사 결과 오른쪽 귀에 돌발성 난청을 앓아 어떤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노인성 난청 환자가 늘고 있다. 인구가 고령화한 탓이다. 통계에 따르면 65세 이상 인구의 약 30%가 난청이다. 70대 이상은 절반이 난청으로 고생한다. 난청 문제는 못 듣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치매·우울증 위험을 높인다는 보고가 있다. 노인성 난청에는 보청기가 제 2의 귀다. 김성근 이비인후과 난청클리닉 원장은 “하지만 보청기만 믿다간 오히려 청력을 아예 잃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보청기 효과를 제대로 보려면 당뇨병·고혈압 같은 만성질환을 잘 관리해야 한다. 귀 질환도 여부도 확인해 치료받아야 한다. 모두 청력과 관련 있다. 하지만 보청기에 가려져 문제를 방치하면 청력이 더 악화된다. 노인성 난청의 심각성과 보청기 효과를 제대로 누리는 법을 알아보자.

보청기 사용해도 안들리면 귀질환 검사를

노인성 난청은 퇴행성 질환이다. 나이가 들며 귀 안쪽에서 듣기를 담당하는 달팽이관과 청신경이 점차 늙어 발생한다. 김성근 원장은 “노인성 난청이 있으면 고음 영역인 자음을 잘 못 듣는다. 간다·판다·산다·찬다 처럼 다른 단어가 모두 똑같이 들린다”고 말했다.

노인성 난청은 삶의 질을 떨어뜨려 우울증을 부른다. 치매 위험도 높다. 김성근 원장은 “미국 존스홉킨스 의대, 국립노화연구소 발표에 따르면 난청이 심한 노인은 치매 발생률이 최대 5배 높았다”며 “청력 손실은 뇌 자극을 줄이고, 치매의 원인 중 하나인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의 뇌 축적을 늘리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노인성 난청은 보청기를 착용하면 청력을 회복할 수 있다. 김성근 원장은 “하지만 문제는 보청기 사용 후 여전히 잘 안 들린다고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는 점”이라며 “착용하자마자 잘 보이는 안경과 보청기가 다르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보청기를 이용해도 잘 못 듣는 이유는 크게 3가지 문제 때문이다. 보청기·만성질환·귀질환이다. 김 원장은 “보청기에서 ‘삑~삑~’ 소리가 나고, 멀리서 하는 말은 잘 듣고 가까이서 하는 말을 못 알아들으면 보청기 문제”라며 “이외에 대부분은 당뇨병·고혈압·고지혈증 등 만성질환과 돌발성 난청·중이염 같은 귀질환 때문이어서 청력 검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5년 동안 김성근 이비인후과 난청클리닉을 찾은 노인성 난청 환자 중 약 20%는 보청기보다 귀질환 치료가 급한 환자였다.

만성질환·귀질환도 관리해야 잘 들려

보청기를 처음 착용했을 때부터 잘 안 들리면 만성질환이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 이때 보청기를 교정해봐야 '워셔액 없이 와이퍼로 자동차 앞 유리를 닦는 것'과 같다. 김성근 원장은 “당뇨병·고혈압·고지혈증은 혈관을 손상시켜 혈액순환장애를 일으킨다. 귀로 이어지는 혈관도 망가뜨려 청력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심장에서 나와 목을 지나는 경동맥은 귀 혈관 문제를 찾아내는 바로미터다. 경동맥의 한 줄기가 귀로 뻗어 있다. 김성근 원장은 “초음파로 경동맥을 검사했을 때 좁아졌거나 손상됐으면 만성질환을 더 철저하게 관리해야 한다. 혈액순환을 개선하면 청력도 좋아진다”고 말했다.

평소 문제 없던 보청기 착용자가 갑자기 소리를 못 듣거나 작게 들으면 먼저 귀질환을 의심한다. 돌발성 난청은 응급질환이다. 김 원장은 “스트레스·바이러스 등으로 달팽이관의 혈관이 갑자기 좁아져 난청이 온다. 보청기에 신경 쓰다 일주일 내에 치료 받지 못하면 청력을 잃는다”고 말했다.

보청기는 이비인후과 전문의의 진단, 청각사의 전문적인 조절, 상담사의 대화법 교육 등 3박자가 맞아야 효과를 볼 수 있다.

노인성 난청을 악화시키지 않으려면 소음을 피해야 한다. 특히 달팽이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약물 복용을 줄인다. 김 원장은 “일부 항생제(아미노글리코사이드 등)와 결핵약은 달팽이관에 독성을 일으켜 난청을 부추긴다. 약을 처방 받을 때 의료진에게 난청 여부를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황운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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