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릴레이 대화 신호 … 한반도 위기 출구전략 공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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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세 외교부 장관(오른쪽)과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12일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한·미 외교장관 공동 기자회견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의 첫 방한은 박근혜 대통령이 북한에 대화를 제의한 바로 다음날 이뤄졌다. 케리 장관은 핵 없는 한반도를 위해 북한과 대화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케리 장관을 통해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의 지지 의사를 확인한 셈이 됐다. 따라서 앞으로 남북 관계에서 주도권을 갖고 대화 분위기를 이끌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런 분위기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에서도 감지됐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11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만나 “누구도 한반도의 분쟁을 원치 않는다”며 “북한이 지금까지 취해온 호전적 접근을 끝내고 온도를 낮춰야 할 때”라고 말했다. 연일 고조돼온 북한의 도발 위협에 위력적인 최첨단 무기를 앞세워 무력시위를 하며 북한을 압박해온 모습과는 거리가 있는 발언이다. 한·미 양국이 대북 대화 쪽으로 분위기를 몰아가는 형국이다.

 케리 장관이 박 대통령의 대북 구상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평가하며 지지 의사를 밝힌 것도 이런 기류와 무관치 않다. 케리 장관은 “박근혜 대통령은 좀 다른 비전을 갖고 대통령에 당선됐다”며 “핵무기 없는 평화로운 한반도라는 그 비전을 존경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남북 관계는 개선될 수 있다. 선택은 김정은에게 달려있다”고 역설했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청와대 예방에서 케리 장관이 박 대통령에게 많은 질문을 했고 박 대통령도 진지하게 대화 취지 등을 설명해 이해를 구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그 때문에 청와대 면담 시간이 당초 30분에서 1시간가량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이와 관련, 박 대통령은 방한 중인 아네르스 포그 라스무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사무총장을 만난 자리에서 “북한이 올바른 변화의 길로 나선다면 우리도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본격 가동해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를 구축해 나갈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케리 장관이 당초 잡혀있던 한·미연합사 방문 계획을 전격 취소한 것도 북한을 자극하지 않고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내려는 의도가 깔려있다는 분석이다. 케리 장관은 박 대통령 면담에 앞서 존 마크 하스 주한 미군 부사령관(중장)으로부터 북한군의 동향에 대해 보고받을 계획이었으나 직전 순방국인 영국을 출발하기 직전에 취소된 것으로 전해졌다. 북·미 직접 대화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답하면서 케리 장관은 김정은을 향해 의미심장한 메시지도 던졌다. 그는 “비핵화라는 방향으로 간다면 대화는 시작될 수 있다”면서도 “대화에는 진정성이 있어야 하며 대화를 위한 대화는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케리 장관은 강력한 한·미 동맹을 통한 북한의 도발 억지력 확보 의지도 거듭 천명했다. 윤병세 외교장관과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그는 “지난 60년간 한·미는 가장 강력한 파트너십을 구축했다”면서 “정전협정 이후 안보 동맹을 통해 60년을 함께 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북한은 핵보유국으로 인정될 수 없으며 북한의 도발적 발언들은 용납될 수 없다”며 “미국은 필요하면 동맹국인 한국을 방어할 것이란 점을 분명히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한·미 외교장관이 열흘 만에 두 번 만난 것은 그만큼 동맹관계가 강력하다는 의미”라고 부연했다.

 케리 장관은 1박2일의 한국 방문을 마치고 13일 중국으로 날아간다. 그는 “(북한과의 대화 제의에 대해) 박 대통령이 말한 내용을 갖고 내일(13일) 중국으로 가서 중국 지도부와 대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박 대통령-미국-중국을 연결하는 메신저 역할을 할 것이란 사실을 이례적으로 공개한 것이다.

 미국 정부는 케리 장관을 통해 남북 대화 분위기를 측면 지원하고 있는 미국 정부의 노력도 소개했다. 이날 케리 장관은 “오바마 대통령은 몇 개의 훈련을 하지 말라고 지시했고 그래서 (북한과의 관계에서) 긴장 완화에 많은 기여를 했다”고 설명했다. 미국이 오래전 예정됐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실험을 보류한 걸 지칭한 것이다. 미국의 외교장관이 공개석상에서 군사훈련 연기 사실의 의미를 공개한 건 이례적이다.

글=장세정·강태화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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