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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급·B급 - 박봉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나는 사회에서 소위 수재들이 모여 있다고 하는 대학에서 교편을 잡아온 지 수년이 된다. 그러는 동안 나는 많은 학생들을 사회로 내보냈으며 또 더러는 더 높은 학문을 위해서 외국으로 보내기도 하였다. 나는 이들의 장래에 기대를 가지며 그것으로 보람을 삼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 느끼게 된 일이지만 이들 우수한 학생 중에는 인간적인 면에서 좀 부족한 사람이 많이 있는 것 같다. 애써서 취직을 알선해 주어도 일언반구의 말도 없으며, 겨우 취직 처를 구해 놓고 연락을 하면 그 사람은 이미 딴 곳으로 가버린 뒤인 수도 있다.
또 외국 유학을 위해 추천서를 몇 통씩이나 써 주어도 그 결과가 어찌 되었는지 무소식 이며 출국 때에는 아무런 인사도 없다가 연말에 성탄절「카드」가 한 장 오게되면 다행인 것이다. 이런 일을 당할 적마다 처음에는 나의 인격이 부족한 소치가 아닐까하여 반성해 보기도 하였다. 우연한 기회에 동료 교수들과 이야기하는 중 이구동성으로 그들도 같은 경우를 여러 번 겪었다는 말을 들었다. 일반적으로 이 대학의 학생들은 「엘리트」의식이 강하고 교수 선배들이 자기들에게 얼마만큼 「서비스」해주고 있는가를 타산하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줄 때가 많다. 대학은 단지 지식을 잘라 파는 곳이 아니다. 덕육에 관해서도 우리 자신이 이러한 학생들이 나오지 않도록 자계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나는 또 어느 사립대학의 강의를 부탁 받아서 나가고 있는데, 이 대학에서 몇 년간 강의를 하는 동안 많은 학생들과 알게 되고 친숙해 졌으며 어떤 사람에게는 취직 처를 알선해주었고 또는 해외유학을 밀어주는 노력도 했다. 그들은 예외 없이 결과를 보고해 주며 최대한의 감사를 표시한다.
A급 대학의 학생들보다도 이러한 B급 대학 학생들에게 인간미와 친근감을 느끼게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들 가운데는 입학시험이라는 「스크린」에 차단되어 인생의 어떤 비애를 한번은 느껴본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이 사회에는 B급 대학 출신들이 숫 적으로 압도적이다. 이 나라의 구석구석에서 사회의 중견으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바로 이들이라고 생각된다.
나는 「버스」안에서 창백하고 초췌한 얼굴에 안경 낀 눈을 껌벅이는 K중학 「마크」를 붙인 학생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회는 A급의 「엘리트」만으로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B급의 사람들 이야말로 이 사회를 지키는 주요한 요원이다. B급에는 B급의 인생이 있다.』 절대로 이상한 열등의식을 갖지 말고 당당하게 B급의 인생을 「프라이드」를 가지고 걸어가 주기를 빈다. <서울공대교수·이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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