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 다시 탑건을 향하여] 中. 나를 만드는 것은 나 자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3면

"우선 물이 있어야겠지요. 그리고 가족과 함께 가야겠고…, 배도 한척 있어야지요. 참! 야구 글러브도 빠지면 안되죠. "

박찬호(30.텍사스 레인저스)에게 "무인도에 가게 된다면 무엇을 가장 갖고 가고 싶은가?"라고 물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순서대로 몇가지만 대보라고. 그랬더니 '물'이라는 대답이 맨 먼저였다. 이유는 살기 위해서. 그 다음에 가족. 가족은 자신에게 삶의 의미이며 '없으면 살 수 없으니' 물과 같은 존재라고 했다.

또 "무인도 생활이 지루해지면 다른 곳으로 가야 하니까 배가 한척 있어야겠다"며 여유를 보였다. 그리고 나서는 야구 글러브를 챙겼다.

그는 지난해 스프링캠프에서 만난 '전설의 투수' 놀런 라이언 얘기를 꺼냈다. 그를 통해 좋은 교훈을 얻었으며 느낀 것이 많다고 했다. 사연은 이랬다.

"그가 캠프를 방문했을 때 저녁식사를 함께 하자고 했더니 선뜻 좋다고 했어요. 고교시절 그를 처음 책으로 만났던 때가 떠올라 '이게 꿈인가' 싶었죠. 그는 저와 비슷한 점이 많았어요. 나태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또 절제하는 생활이 비슷했죠. 그는 내게 단거리 러닝을 많이 하라고 권했어요. 저는 그를 닮고 싶었어요. 바로 다음날부터 엄청나게 뛰었죠. 원래 뛰는 것을 좋아하는 데다 라이언이 권했으니 오죽했겠습니까. 좀 무리다 싶을 정도로 뛰었죠. 그런데, 바로 그 다음날 1루 커버하러 가다가 허벅지를 다쳤어요. 그리고 그 부상은 시즌 내내 저를 괴롭혔죠. 그때 얻은 교훈이 있어요. 어떤 사람이 했던 것을 그대로 따라한다고 그 사람처럼 되는 것은 아니라는 거지요. "

그는 시즌 중에 또 한번 절실하게 그 교훈을 되새길 기회가 있었다고 했다. 이번엔 동료들을 통해서였다.

"부상으로 공을 던지지 못하면서 팀 동료들과 관계가 어색해졌어요. 환하게 웃으면서 대해주던 동료들이 그저 간단한 눈인사만으로 지나치기도 하고, 무엇보다 제가 얼굴을 들고 다니기가 미안했어요. 특히 감독이나 구단주를 볼 때는 죄책감마저 들었죠. 그래서 부상에서 회복한 뒤 마운드에 올라 그들의 충고를 모두 수용했어요. 알렉스 로드리게스 같은 선수는 위기 때 저에게 와서 '이 구질을 던져라'는 충고까지 하지요. 저는 그대로 했어요. 그런데 결과는 반대였어요. 로드리게스의 충고가 틀려서가 아니라 제가 그 구질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던져서였죠. 같은 직구를 던져도 믿음과 자신감을 갖고 던질 때와 불안한 마음으로 던질 때는 다릅니다. 그때 또 한번 깨달았어요. 나를 만드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이라는 것을. "

그는 시즌이 끝난 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라고 말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산을 보고 있을 때는 산을 봐야지 다른 것을 보고 있으면 산으로 보이지 않아요. 나를 만들려고 하면 나를 봐야지 다른 사람을 보면 내가 안되는 거죠. 나를 바보같이 만드는 것도 나 자신이고 날 강하게 만드는 것도 나 자신입니다. "

그는 지난해 뉴욕 양키스전 승리가 그런 교훈에서 비롯됐으며 의미있는 승리였다고 덧붙였다.

"상대가 천하의 양키스였는데도 꼭 이겨야겠다는 마음이 없었어요. 나라는 것만 생각하고, 공 던지는 데만 집중하자며 던졌죠. 결과는 생각하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결과가 좋았고 동료들이 많은 축하를 해줬어요. 누구나 이기고 싶어하는 양키스를 이겼으니까요. 그때부터 상승세를 타게 됐지요. "

이태일 야구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