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날아다니는 ICT공룡’으로 체질 바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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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KT는 11일 혁신추진단을 신설하고 457명의 아이챌린저를 선발했다. 이석채(오른쪽 둘째) 회장이 아이챌린저들과 함께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사진 KT]

“우리 집에 KT 고지서가 두 개 날아옵니다. 그냥 전화랑 휴대전화. 참 멍청한 짓 아니오. 하나로 합치면 종이값이랑 우편료랑 절반으로 줄 텐데….”

 2009년 가을, 이석채 KT 회장이 경기도 안양지사를 방문했을 때였다. 마침 그곳을 들른 한 노인이 다짜고짜 이 회장의 팔을 붙잡더니 이렇게 얘기했다. 그 노인은 신문에 이 회장이 많이 나와 얼굴을 안다며 KT를 바꾼다고 좋은 일 많이 하는 것 같은데 바꾸려면 그런 것부터 바꿔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2009년 6월 유선과 무선 사업을 맡고 있는 KT와 KTF를 통합해 새로운 조직으로 거듭난다고 선언했는데, 정작 현장에서는 요금 고지서 통합조차 안 되고 있었다. 실무 부서에 알아보니 전산 통합이 안 된 게 문제였다. 한 발 떼기조차 버거운 ‘통신 공룡’에서, 공룡이기는 하지만 몸놀림이 날쌘 ‘정보통신기술(ICT)의 벨로시랩터’로 체질을 개선하려 하는 데 전산(IT) 시스템이 걸림돌이 됐다.

 KT는 2010년 리모델링 수준이 아니라 아예 IT 시스템을 재건축하기로 했다. 글로벌 ICT 기업으로 탈바꿈하기 위한 이 작업을 BIT(Business&Information system Transformation) 프로젝트라 이름 붙였다. BIT 프로젝트는 경영정보·영업·시설·서비스 등 네트워크를 제외한 사실상 전 IT 플랫폼을 모두 바꾸는 것이다. 특히 그간 KT 직원들이 일해 왔던 방식에 맞춰 IT 플랫폼을 설계한 게 아니라 글로벌 표준모델(Best Practice)에 맞춘 IT 플랫폼을 그대로 들여왔다. 그러자 예상치 못한 벽에 부닥쳤다. 바로 시스템이 아닌 사람의 문제였다.

 BIT 프로젝트가 완료되면 KT의 모든 직원들이 IT 플랫폼에 맞춰 짧게는 수년, 길게는 수십 년 해왔던 업무 방식을 통째로 바꿔야 하는데 말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적지 않은 기업들이 혁신을 추구하지만, 대부분 실패하는 이유는 혁신의 주체가 돼야 할 직원들이 변혁을 공감하지 못한 탓이다. KT 관계자는 “그냥 IT 플랫폼만 들여와서는 효과도 없으면서 괜히 직원들에게 가욋일만 얹어주는 격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고 말했다.

 KT는 그래서 11일, BIT 프로젝트를 비롯한 각종 혁신에 대한 사내 공감대 확산을 위해 혁신추진단을 신설했다. 이 회장은 이날 경기도 분당 본사에서 열린 발대식에서 부서별로 선발한 혁신 전도사 457명에게 ‘아이챌린저(Innovation Challenger)’ 임명장을 수여했다.

 옥성환 혁신추진단장은 “초기 중국 명나라는 110가구를 1리(里)로 하고, 그중 10가구를 이장호(里長戶)로 지정해 남은 100가구를 살피는 ‘이갑제(里甲制)’를 통해 대륙을 통치할 수 있었다”며 “아이챌린저 한 명이 다른 10명을 혁신으로 물들이면 KT가 뛰는 걸 넘어 날아다니는 공룡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챌린저로 임명된 경제경영연구소 그룹컨설팅지원단의 김범수(39) 매니저는 “전에는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실무 부서에서 6개월 넘게 걸려 어렵다고만 하니 거대한 벽에 가로막힌 기분이었다”며 “그런데 BIT에 맞춰 일해 보니 한 달이면 돼 일할 맛 난다”고 말했다.

 발대식 후 이 회장은 모든 KT 임직원들에게 e메일을 보내 “몇 년 전 어떤 임원이 ‘데이터 하나를 뽑는 데 일주일이 걸리고, 같은 데이터를 또 뽑기는 불가능하다’고 지적하는 것을 보고 솔직히 기가 막혔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이 회장은 “BIT에 적응하는 게 만만치는 않겠지만 세계 일류 ICT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한 핵심 여정으로 생각하고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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