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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위크]섹스와 탐욕으로 얼룩진‘엔론 왕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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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론社 파산사태에 관한 청문회를 진행하던 상원의원들은 증인의 뻔뻔스러운 태도에 당황한 듯했다. 지난주 청문회에 출석한 제프리 스킬링 엔론社 前 최고경영자(CEO)는 묵비권을 행사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것처럼 도도했으며, 때로는 거만하게 대답했다. 그는 거짓말을 한 적이 없으며 엔론의 문제가 모두 다른 사람의 잘못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엔론의 내부비리를 폭로했던 셰런 왓킨스 前 부사장과 스킬링의 한판 설전을 기대했던 사람들은 실망했다. 왓킨스는 스킬링의 지척에 앉아 있었지만, 그와 눈이 마주치는 것조차 피했다. 스킬링은 5시간 동안 질문공세에 시달렸지만 그의 고자세는 변함이 없었다.

엔론의 또다른 중역이었던 레베카 마크는 텍사스州 휴스턴의 호화 저택에서 이 광경을 TV로 지켜보면서 엇갈리는 감정에 휩싸였다. 우선 스킬링과 상원의원들 사이에 벌어진 말싸움이 재미있었다. 스킬링이 잘난 체 하는 정치인들을 경멸하듯 말하자 통쾌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지만 스킬링이 엔론 인터내셔널社를 계속 비판하자 불쾌함을 느꼈다. 엔론 인터내셔널은 마크가 경영했던 엔론의 자회사였다. 마크는 뉴스위크 기자에게 “엔론 인터내셔널은 초창기인 1993년부터 내가 회사를 떠난 2000년 중반까지는 흑자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마크는 스킬링의 허세와 남을 위협할 수 있는 능력을 잘 알고 있었다. 1990년대 엔론이 무명의 에너지 회사에서 신경제의 대표기업으로 급성장하는 동안 마크와 스킬링은 라이벌 관계였다. 마크는 엔론의 스타 중 하나로 포천誌가 선정한 미국의 50대 여성경영자 명단에 두번이나 올랐다. 그녀의 저돌적인 협상력은 전세계 지도자와 기업 경영자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치열한 생존경쟁이 벌어졌던 엔론의 밀림 속에서는 마크의 숙적 스킬링이 조용히 그녀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마크는 자신이 스킬링의 중상모략에 시달렸고, 결국 그의 교활한 잔꾀에 패배했다고 생각했다. 엔론에서는 스킬링과 마크가 애인사이라는 소문도 퍼졌다. 마크는 “이것은 대답할 가치조차 없다”고 말했다. 스킬링의 대변인도 “전혀 근거 없는 말”이라고 일축했다.

스킬링은 의회 청문회뿐 아니라 수많은 소송에 직면해 있으며 경찰의 수사도 피할 수 없는 입장이다. 마크가 스킬링이 처한 이런 곤경에 대해 고소하게 생각한다고 해도 그것을 비난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마크는 이 혼란에 휩쓸리지 않았다고 해서 기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물론 그녀는 엔론의 주가가 높을 때 주식을 매각해 5천6백만달러를 챙겼고, 뉴멕시코州 타오스 스키장에 별장까지 갖고 있다. 그러나 스킬링과의 경쟁 또한 그 못지 않게 흥분되고 짜릿했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엔론 스캔들을 그리스 비극에 견주거나, 교만에 관한 교훈적인 이야기로 바라본다. 이것을 남녀 성대결의 결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엔론 사건은 무지막지한 경쟁의 결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적절할 것이다. ‘시장(市場)의 기적’은 경쟁이 좋은 것이라는 가정을 바탕으로 한다. 다시 말해 더 좋은 상품을 더 빠르고 더 싸게 공급하려는 경쟁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이익을 준다는 것이다.

적어도 이것은 ‘탐욕이 善’이라는 사실을 설명하려는 사람들이 애용하는 이론이다. 그러나 자만심과 탐욕이 끼어들면 일은 걷잡을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스킬링과 마크의 경쟁이 벼랑끝까지 간 것도 이 때문이다. 그동안 수십억달러짜리 회사와 수많은 직원·주주들도 벼랑끝으로 내몰렸다.

이 드라마가 전개되는 동안 엔론의 창립자 켄 레이 회장은 일상적인 경영보다는 정치인을 만나거나 자선행사에 나가는 것을 더 좋아한 것 같았다. 레이 회장의 총애를 얻고자 경쟁했던 마크와 스킬링은 각자 서로 다른 엔론의 미래상을 제시했다. 마크가 생각한 번영의 길은 더 큰 성채를 짓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그녀에게는 거대한 에너지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엔론의 미래였다. 그러나 스킬링은 발전소 같은 유형 자산이 장난감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그는 매매·매도와 같은 실제 거래에서 돈이 생긴다고 주장했다. 둘은 각자의 비전을 정당화하는 데 막대한 이권을 걸었다.

엔론에서 마크의 별명은 ‘상어’였다. 그녀는 판단이 빨랐으며, 어떻게 목표물을 물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1980년대 초반 에너지 사업에 뛰어들었을 때, 이 분야를 지배하던 사람들은 유행이라는 것을 모르는 남성들뿐이었다. 촌스러운 옷을 입고 일하던 남성 경영자들과는 달리, 마크는 하이힐과 몸에 꼭 끼이는 에스카다 정장을 입었다. 그녀의 임무는 발전소를 만들고 여기서 생산된 전기를 판매하는 것이었다.

심한 규제로 활기가 없었던 전기회사 세계에서 그녀는 새로운 돌풍이었다. 사람들은 그녀를 신기한 눈으로 바라봤다. 그녀는 여성적이며 현실적인 태도로 협상 상대방 남성을 무력화시킨 다음 허를 찔렀다. 1990년대 중반까지 그녀가 미국 내에서 건설했거나 타사로부터 인수한 발전소는 5개였다. 그리고 유럽·아시아·남아메리카·중동에서도 발전소 15개 이상을 확보하는 등 파죽지세로 일을 해치웠다.

그러나 회사 안에서는 스킬링이 만만치 않은 경쟁상대였다. 스킬링도 마크처럼 중서부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텍사스州에서 대학을 나오고 하버드大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했다. 1993년 40세가 된 두 사람은, 모두 엔론의 최고위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스킬링은 자신이야말로 진정한 비전을 가진 사람이라고 믿었다.

스킬링은 발전소를 인수하고 전기를 판매하는 것이 구경제적 사고방식이라고 주장했다. 인터넷 신경제에서는 아무 것도 갖고 있지 않으면서도 시장을 창출하고, 여기서 거래하는 사람이 가장 큰 이익을 남긴다는 것이었다. 그가 보기에 발전소를 세우고 운영하는 것은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었다. 거액의 자본이 드는 반면 이익은 크지 않기 때문이었다.

스킬링은 공장은 누구나 지을 수 있지만, 조각들을 모아 새로운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천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단순히 하버드大 MBA 출신이 아니라 자신처럼 베이커 장학생은 돼야 이런 천재의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사실 엔론의 몸집을 키우는 데는 이런 천재뿐만 아니라 부정직한 회계도 필요했다. 엔론은 이런 회계로 손실과 부채를 감추고, 확실하지도 않은 미래의 추정 이익을 현재 수익으로 기록했다). 그리고 가스와 전기에서 머무르지 말고 수도나 인터넷 전용선까지 사업을 확장해야 한다고 그는 고집했다. 결국 엔론은 일기예보에 기초한 파생금융상품까지 거래했다.

스킬링은 공격적이고 저돌적이었으며 논리정연하고 부드러운 사람이 아니라 교활하고 고집 센 인물이었다. 그는 그런 능력으로 승승장구했으며, 판단이 느린 사람이나 자신에게 도전하는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대했다. 월스트리트 분석가들이 모인 회의석상에서 스킬링은 집요하게 질문하는 사람에게 상스러운 욕까지 거침없이 내뱉었다. 스킬링은 엔론의 경쟁사뿐만 아니라 사내 라이벌까지 짓밟으려고 했다.

1993년 스킬링은 레이 회장을 설득해 마크가 맡고 있던 사업영역의 일부를 차지했다. 미국 내의 발전소 운영권을 손에 넣은 것이다. 그는 자신의 계획에 필요한 현금을 확보하기 위해 곧바로 이 발전소를 팔아치웠다(스킬링의 대변인은 그가 마크를 직접적인 라이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자신의 영역을 빼앗긴 마크는 처음에는 그냥 어리둥절했다. 기습 공격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 문제와 관련해 자기 주장을 펼칠 기회도 얻지 못하고 당했다. 그녀는 스킬링이 어려운 일은 해본 적도 없으면서 말만 늘어놓는 類의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마크는 샐쭉해 있기보다는 일에 더욱 정열을 쏟았다. 그녀는 세계를 돌아다니며 발전소를 인수하거나 새로 건설했다. 지금 생각할 때 그녀는 너무 비싼 값에 발전소를 인수했다. 특히 인도에서 30억달러를 주고 발전소를 인수했지만 얼마 후 그 발전소는 정치적 음모에 휘말렸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계획이 황금의 길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녀는 세련된 옷을 입고 회사 전용 제트기를 타고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세계 지도자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중국에 진출하기 위해 헨리 키신저와 함께 중국 총리에게 로비를 했으며 이스라엘 총리와 전화통화도 했다. 카타르의 고위관리에게는 여성 파워를 보여줬다. 그 관리는 처음에는 마크와 직접 대화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3시간 면담 후 그는 “만약 당신이 전에 여기 왔었다면 우리는 이 문제를 오래 전에 해결했을 것”이라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그녀를 치켜세웠다.

그때부터 세계 각국 정부는 엔론社의 존재를 인식했다. 마크는 자신의 상사들이 엔론 브랜드를 확장하고 인지도를 높이려는 자신의 노력에 대해 기뻐하리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녀는 다른 간부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스톡옵션을 받았다. 그러나 자신이 예상했던 만큼의 영예는 얻지 못했다. 아마도 레이는 자기 자신을 엔론의 최고 세일즈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지 마크가 주목받는 것을 환영하지 않는 것 같았다.

레이의 신임을 받는 사람이 스킬링이란 것이 곧 분명해졌다. 마크가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는 동안 스킬링은 엔론 본사를 자신의 심복들로 채워넣고 있었다. 엔론에서 근무했던 한 사람은 “스킬링은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지의 여부를 입사 자격으로 삼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가 뽑은 직원들은 ‘엔론化’라고 부르는 회사입문 과정에 대해 거론했다.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나 삶의 질 같은 것은 아예 생각도 못할 뿐더러 ‘적자생존’ 문화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회사가 원하는 바를 이해할 수 없는 부류’로 간주됐다는 것이다. 그런 직원들은 엄격한 연례 인사평가에서 자칫하면 파면 대상이 될 수 있는 ‘망가진 물건’이자 ‘난파선’으로 분류됐다.

엔론의 그런 문화는 일종의 편집증으로 변했다. 사내 보안을 위해 美 중앙정보국(CIA)과 연방수사국(FBI) 출신 인사들이 고용됐다. 그들은 ‘탐지’ 프로그램들을 활용해서 잠재적인 경쟁업체에 e메일을 보내는 모든 사람들을 색출하곤 했다. ‘비밀탐정’이라고 불리던 그들은 걸핏하면 직원 사무실 문을 박차고 들어가 컴퓨터를 압수하기도 했다.

일부 직원들은 그런 ‘문화 혁명’을 불길하게 받아들였다. 파머 메모리얼 성공회 교회의 제임스 너터 신부는 너무나도 많은 엔론 직원들로부터 비참하다는 말을 들은 나머지 스킬링에게 “그들은 당신의 소유가 아니라 하느님의 소유”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그러나 많은 엔론 직원들은 하느님 대신 물질만능주의를 숭배했다.

엔론 내부에서 진정한 신분의 상징은 신형 페라리 스포츠카가 아니라 보안용 카메라로 감시받는 특별 주차 공간이었다. 스킬링은 심복 직원들(한 직원은 그들을 ‘막강군단’이라고 불렀다)을 데리고 사나이다움을 과시하는 모험여행을 떠나곤 했다. 그들은 자전거로 1천6백km 거리를 달리는 멕시코 횡단 경주도 했고 험한 호주 오지를 달리면서 자신들이 빌린 비싼 스포츠다목적차량 여러대를 망가뜨리기도 했다.

엔론의 각종 파티는 추첨 경품으로 고급 티파니 유리제품들을 제공하고 샴페인잔을 든 웨이터들이 상시 대기하는 등 최고급으로 치러졌다. 일부 비공식 파티는 유치하기도 했다. 한 파티에서는 얼음 덩어리를 입에 넣은 다음 입을 벌린 채 그 위에 칵테일을 부어 그대로 마시는 ‘루지샷’이 제공됐다.

휴스턴의 ‘남성 전용 클럽’인 트레저스에서는 스트리퍼들이 엔론 신용카드를 내보이는 고객들을 찾기 시작했다. 한 스트리퍼는 뉴스위크 기자에게 “그것은 신용이 좋은 고객에게 발행되는 플래티넘카드와 마찬가지”라면서 “엔론 사람을 만나면 그날은 돈을 두둑히 벌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창 잘 나가던 시절 엔론 직원들은 점심 시간에 트레저스에 가서(최고 5백75달러나 하는) 크리스털 샴페인 한병을 사들곤 위층에 있는 ‘VIP룸’에 드나들곤 했다. VIP룸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아느냐고 묻자 한 스트리퍼는 “남자가 누군가에게 1천달러를 준다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뻔하지 않는가”라고 말했다.

섹스 스캔들은 엔론社에 만연해 있었다. 스킬링은 부인과 이혼하고 엔론의 비서와 약혼했다. 스킬링은 그 비서를 60만달러의 연봉을 받는 직위로 승진시켰다. 내부자들은 그녀를 곧 ‘섹시함을 무기로 삼은 여자’라고 불렀다. 중역인 루 파이는 부인과 이혼하고 스트리퍼 출신 여성과 결혼했다. 회사 간부들과 잔 것으로 믿어지는 여직원들은 동명의 영화 제목에서 따온 ‘프랑스 중위의 여인들’로 불렸다.

연례 인사평가를 두려워 하는 직원들은 그 여성들이 스파이 노릇을 한다고 걱정했다. 가장 유명한 스캔들은 둘다 중역인 켄 라이스와 아만다 마틴 사이에 벌어졌다. 그들은 창문을 통해 안이 들여다 보이는 마틴의 사무실에서 애정행각을 벌였다. 엔론 직원들은 뉴스위크 기자에게 “그들은 서로 몸을 더듬고 음란한 행동을 했다”고 말했다.

마크도 사내에서 밀애를 한 듯하다. 그녀는 1980년대 말 이혼한 후 엔론의 컨설턴트 존 윙과 사귀었다. 마크의 동료 중 몇몇은 윙이 엔론에 입사한 후에도 그들의 관계가 계속된 것으로 믿었다. 엔론의 前 인사담당 간부에 따르면 일부 직원들은 사내 로맨스와 외설스러운 가십이 회사 분위기를 흐린다며 그런 행위를 금하는 회사 규정을 도입하자고 제의했다. 그러나 회사측은 그에 대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마크도 흥청망청한 파티를 연 적이 있었다. 그녀는 휴스턴 외곽의 한 휴양지에서 열린 인도 엔론 발전소 개발 축하 파티에 아기 코끼리를 등장시켰다(그 파티에서 그녀는 가죽 옷을 입고 할리데이비드슨 오토바이의 뒷좌석에 올라 타고 입장했다). 그러나 그녀는 본사 중역들이 근무하는 곳에서 떨어진 별도의 건물에서 일하는 바람에 레이-스킬링 측근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따라서 그녀는 스킬링이 자신을 음해하려고 얼마나 혈안이 돼있는지 정확히 감을 잡지 못했다.

1997년 스킬링은 마크의 또다른 담당 분야를 넘겨받았다. 유럽 일부 지역의 에너지 개발 부문이었다. 그때서야 마크는 스킬링이 자신을 파멸시키려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두 사람은 “짧고 가시돋친 대화를 했다”고 마크는 말했다. 그러다가 1998년이 되자 스킬링은 엔론의 최고운영책임자(COO)가 됐다. 마크는 부회장으로 발령받았다. 엔론 내부자들 사이에는 부회장직이란 ‘곧 쫓겨날 자리’로 통했다.

마크는 마지막 수단을 썼다. 바로 그해 그녀는 엔론에서 분사한 수도회사인 아주릭스의 경영을 떠맡았다. 마크는 원대한 계획을 갖고 있었다. 세계의 식수에 대한 권리를 가능한 한 많이 인수해서 식수 판매로 이익을 낸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엔론측이 충분한 지원을 해주지 않자 그녀는 자금 확보를 위해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그 회사의 주식을 공모했다. 주가는 곧바로 폭락했다.

또 아주릭스는 한 영국 회사에 많은 투자를 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현지 정치문제에 휘말렸고 그 프로젝트는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그녀는 아주릭스를 되살리기 위해 아만다 마틴을 영입했다. 마틴은 공격적이고 마크처럼 멋진 스타일이었다. 그러나 곧 마크는 마틴에게 불안감을 느꼈다. 동료 중 일부는 마틴을 스킬링의 스파이라고 의심했다. 마틴은 그같은 생각을 일축하면서 “내가 스킬링 진영을 버리고 나온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명이었기 때문에 충분히 그렇게 의심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마크는 스스로 공격 대상이 되는 실수도 범했다. 그녀가 수도회사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 회사를 인수하려고 했을 때 가격이 지나치게 높다는 불만이 일었다. 그 서비스 회사는 그녀의 약혼자가 운영하는 회사였다. 그러자 한 직원이 엔론의 법률고문에게 마크가 엔론을 이용해 사리를 채우고 있을지도 모른다며 조사를 촉구했다. 그 내부 밀고자는 다름 아닌 아만다 마틴이었다. 회사 인수는 백지화됐다. 마크의 측근에 따르면 그 거래를 백지화하기로 결정한 사람은 마크 자신이었다.

2000년 8월이 되자 마크는 회사를 그만두지 않을 수 없었다. 금전적인 면에서 볼 때 그녀는 운이 좋았다. 스톡옵션으로 받은 주식을 팔아 큰 이익을 챙긴 것이다. 엔론의 주주들을 포함한 외부인들은 여전히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지만 스킬링의 제국은 이미 내부에서부터 썩기 시작하고 있었다. 엔론 경영진은 자사의 주가를 올리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의 일환으로 부외(簿外) 거래를 하는 사업체를 수백개나 만들어냈다. 그중 일부는 부채와 손실을 숨기거나 위장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2001년이 되자 주가가 결국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스킬링은 자신의 소원을 이루었다. 2001년 1월 레이 후임으로 CEO가 된 것이다. 그러나 8월이 되자 그는 ‘일신상의 사유’를 내세워 조기 퇴직을 선언했다.
요즘 마크는 세계 각지를 다니며 협상을 하던 시절을 그리워하지 않는다. 대신 그녀는 10대 쌍둥이 아들이 선수로 뛰는 하키와 농구경기에 가고 최상류층이 다니는 헤어살롱에서 가십을 주고받는 여유를 즐기고 있다(지난주 그 헤어살롱의 주요 화제는 다가오는 스킬링과 그의 前 비서 레베카 카터의 결혼식에 관한 것이었다).

스킬링의 경우 지난주 상원 청문회에서 허세를 부리긴 했지만 그의 진정한 고통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그는 앞으로 수년 동안 민사소송에 시달리며 감옥에 가지 않으려고 애써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심복들은 어떨까? 지난해 크리스마스 직후 8명의 엔론 직원들이 단체로 마지막 스트립쇼를 즐기기 위해 트레저스에 나타났다. 그들은 술을 몇잔 마시기 위해 ‘VIP룸’에 모였다. 한 웨이트리스에 따르면 그들이 가장 많이 사용한 건배의 말은 “빌어먹을 엔론”이었다.

한때 매주 엔론 파티가 열리던 틸라스 레스토랑에서는 분위기가 상대적으로 덜 적대적이었다(틸라스는 8천달러에 식사·음료·주차·택시 서비스를 제공했었다). 몇주 전 엔론이 파산하고 있는 가운데 틸라스에서는 엔론社의 작별 파티가 열렸다. 한 직원이 자신의 엔론 신용카드로 결제를 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 카드는 거래승인이 거부된 것이었다. Johnnie L. Roberts Evan Thomas 기자

출처:뉴스위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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