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전하는 미 대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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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주한 미 대사」자리는 미국 외교가에서 흔히 「영전의 대기실」로 알려지고 있다. 「윈드로프·브라운」대사도 이번에「러스크」국무장관의 특별보좌관으로 전임하게 된다.「외교정책문제에 관한 주지사와의 연락담당」이 그의 보직이다. 우리나라보다 큰 주들이 수두룩한 형편이니 그의 영전은 황새걸음이다.
방금 동남아 순방의 길에 서울을 들른 「새뮤얼·D·버거」 국무성차관보도 그 자리에서 영전했었다. 그보다 앞서 「매카나기」대사도 역시 「주한미대사」라는 영전의 계단을 밟았다.
「브라운」대사가 재직하는 동안 한국은 일본과 국교를 수립하고 월남 전선에 수만명의 우리 군대를 보냈다.「버거」대사 시절엔 군정이 민정으로 이양되었으며, 헌정은 이때부터 다시 제걸음을 시작했다. 「매카나기」대사 시절엔 보다 큰일이 있었다. 이 박사의 집권에 종지부를 찍은 4·19가 바로 그때 터진 것이다.
우연한 사실들은 아니다. 연간 4천5백만 「달러」의 원조를 하고 있는, 바로 우리의 최대 수혜국이 미국이고 보면 말이다.
대통령 승용차와 같은 모양의 「캐딜락」을 타는 미대사의 비중을 우리는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우의와 협조와 때로는 충고의 상관관계에서 파생 될 미묘한 중력상태에서 무중력의 유기적인 관계가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는 과연 우리 외교의 기교일 것이다.
미 대사라고 모두 우리나라에서 영전의 기틀을 닦은 것은 아니다. 55년 8월 13일 한국에 부임했던 「레이시」 대사의 경우는 공항에서 단 한사람의 한국 관사로부터도 영접을 받지 못했다. 외국상사의 과세율 인상문제로 한국 정부와 옥신각신할 때도 그는 이 대통령의 콧김에 기를 펴지 못한 인상이었다. 「레이시」는 주 「필리핀」대사로 있을 때 「퀴리노」대통령을 미측의 작용으로 낙선시켰던 경력을 가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었다. 이 박사는 바로 그와 같은 대사의 영향력을 무시하고 억제했던 것이다. 외교는 고집이나 억지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그의 반대 경우도 물론 생각할 수 없다. 외교의 왕도는 역시 화학적·물리적 중산이 아닐까? 신임「포터」대사를 맞으며 우리의 좋은 우인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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