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송호근 칼럼

끓는 야망, 막힌 출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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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필자는 100% 동의한다. 한국인은 ‘끓는 야망’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이건 내 말이 아니다. 세계 최고 컨설팅기업 맥킨지를 총괄 지휘하는 도미니크 바튼 회장의 말이다. 그는 한국인이 끊임없이 생산하는 열망을 ‘다듬어지지 않은 야망(raw ambition)’이라 표현했는데(조선일보 3월 30일자), ‘가슴 바닥에서 무한히 샘솟는 본능적 야망’, 외국인들이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끓는 야망’이다. 한국이 죽음의 계곡을 건너가던 1996~2004년간 서울 재직 끝에 얻은 바튼 회장의 관찰은 자신의 리더십을 바꾸어 놓았다. 그곳이 어디건 지층 속에 파묻힌 야망의 자원을 찾아 점화하고, 야망에 상기된 인재를 발굴해 전면에 내세우는 일이다. 끓는 야망에 출구를 뚫는 일, 그것이다.

 한국인에게서 야망을 본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1894년 겨울, 조선에 입국한 영국왕립지리학회 회원인 이사벨라 버드 비숍 여사 역시 저물어가는 중세에서 꿈틀거리는 용암을 목격했다. 무질서하게 들끓는 용암에서 강렬한 매력이 발산되고 있음을 알게 되기까지 일 년 정도가 걸렸다. 조선에 발을 들였을 때의 그 찝찝한 인상들은 어느새 강한 호기심으로 바뀌었고, 급기야는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 “한국인들은 어떤 행정적 계기만 주어지면 무서운 자발성을 발휘하는 국민들이다.” 들끓는 야망, 이 무서운 자발성으로 지난 20세기를 건너왔던 것이다.

 비숍 여사가 토를 단 ‘행정적’이란 용어는 국가리더십을 뜻한다. 해방 후 두 유형의 국가리더십, 무서운 자발성을 발휘하게 한 ‘계기’가 있었다. 하나는 말할 것도 없이 ‘눈치 보지 않고 질주한’ 박정희 대통령이었다. 끓는 야망을 동원해서 강력한 노즐로 증폭한 결과가 한강의 기적이었다. 다른 유형은 25년간 지속된 ‘민주적 출구’였다. 개발독재의 폐해를 해독(解毒)하면서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의 나라로 힘겹게 밀어올렸다. IMF 사태로 된서리를 맞기도 했지만 새로운 출구를 뚫느라 고군분투한 세월이었다. 경제규모가 커지고 기업조직이 팽창하면 새로운 출구 찾기가 쉽지 않다. 야망은 여전히 들끓고 있으나 자본주의 규칙의 지배력은 더욱 견고해지기 때문이다. 박근혜정부가 당면한 상황이 이것이다.

 ‘창조경제’는 박근혜정부가 이런 막힌 상황을 정확히 착목했다는 증거다. 이 개념이 출현했을 때 국민들은 뭔가 참신하고 획기적인 변혁의 계기, 그 비장의 리더십이 준비되어 있다는 강한 인상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아직 설계도면을 그리고 있단다. 창조경제가 뭐냐고 다그치는 새누리당 의원들에게 유민봉 국정기획수석은 ‘결국 경제의 패러다임을 바꾸자는 것’이라 답했다. 낱말풀이였다. ‘어떻게?’라는 후속 질문엔 ‘연구 중’이란 답이 돌아왔다. 창조경제의 수장인 최문기 미래부장관, 최순홍 미래전략수석도 신통한 답을 못 내놨다.

 경제라인은 어떨까? 현오석 경제부총리, 조원동 경제수석, 윤상직 산통부장관은 모두 관료 출신이다. 관료라고 창의성과 거리가 먼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경제적 순항과 사태수습에 더 정통하다. 조원동 수석은 전임정권과 선을 긋기 위해 이미 성장률을 하향 조정했다. 예상되는 성장침체에서 면피하려는 관료적 조처였다. 그러면 속이 허한 저 멋진 개념만으로 집권에 성공했단 말인가? ‘끓는 야망’을 과연 증폭시킬 수나 있을까, 아니면 냉각시킬까.

 보다 못해 대통령이 나섰다. ‘과학기술과 ICT 융합을 통해 산업과 산업, 산업과 문화가 융합해 부가가치·성장동력·일자리를 생산하는 것’이라 일갈했다. 용기를 얻은 참모진은 U-헬스 만보기, 염도측정 젓가락, K팝 한류원정대를 예로 들었다. 융합이라면 어디 이뿐이랴, 과학기술과 바이오가 결합한 바이오X, 소프트웨어 벤처 같은 ‘원조 창의산업’ 등 리스트는 한없이 길다. 다 좋은데, 한국이 겨냥할 표적은 무엇이고, 누가,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청와대는 5월 말까지 밑그림을 내놓겠다고 했다. 역시 개념만 있었다는 뜻이다.

 창조경제엔 두 가지 선행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도미니크 바튼 회장도 이 점을 강조했다. 창조생태계가 조성되어 있는가? 한국인의 우수한 두뇌에서 생산된 창의적 아이디어와 혁신적 제안들이 나날이 발육되는지, 아니면 버려지는 환경인지를 점검해야 한다. 다른 하나는 교육. 대학진학률과 학업열성이 세계 최고인 국가에서 ‘재능과 끼’를 지목한 것은 적확한데, ‘어떻게’가 궁금하다. 아무튼, 기왕 기다린 거, 몇 달의 시간은 있다. 그러니, 경제부·미래부·교육부 합동 연속세미나를 열고 밤새 토론해서 그럴듯한 종합설계도를 보여달라. 끓는 야망을 냉각시키는 사람은 정치인들 용어로 ‘역사의 죄인’이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