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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과 여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북괴의 선거가 세계의 「토픽」거리로 등장해서 실소를 산 일이 있다. 62년 10월 8일에 실시된 선거는 투표율이 1백%였으며, 그1백%는 단 한표도 빠지지 않고 이른바「노동당」을 찬성했다는 것이다.
투표율이 1백%를 초과하지 않은 것만도 이상하지만, 그날 따라 한사람의 사망자도 없었던 것은 또한 기적이다. 하긴 62년 6월 4일 「알바니아」에서 실시된 선거의 투표율도 99.9992%였으며 「노동당」의 찬성투표가 99.9955%였다. 두 선거가 모두 공산치하에서 실시된 것이니 화제도 못된다. 이런 투표는 있으나 마나고, 이때의 「1표」는 도무지 무가치하다. 그것은 한 단위로나 뜻이 있을지 권리의 행사도 주권도 아무것도 아니다.
비록 영국령이었지만 동「아프리카」의 고도 「잔지바르」에서 있었던 선거는 국민의 미개와는 상관없이 투표·개표의 공명을 보여주었다. 61년 1월 18일의 선거에서 「아프로·시라지」 당은 단 한표차로 승리를 거두었으며, 그 1표는 의석의 과반수을 넘게 하는 의미가 있었다.
민주국가에서의 「1표」는 국가의 운명적인 의미를 가지며, 또한 전국민적인 비중을 함축하고 있다. 「1표」는 인간의 존엄이며 가치이다.
선거관리위원회가 헌법기관(헌법 l07조)으로 독립한 것은 바로 그 「존엄」과 「가치」의 향상이기도하다. 이제 눈앞에 다가선 투표일을 앞두고 선관위는 정말「근엄」과 「용기」를 가질 때다.
며칠전 서울에서 열렸던 IPI「아시아」 편집인 「세미나」에 참석한 암입일낭(일 공동통신 상무)씨는 한국의 선거제도를 「프랑캔슈타인」(괴물)같다고 말했다. 참말 그것이 괴물이냐, 자유의 여신상이냐는 선관위의 「관리」에 달려있다. 아니, 최후의 보루는 헌법의 의지인 국민의 눈과 가슴.
「공명」을 지켜보는 눈과 「공명」을 행사하는 양심, 그것이다. 그리고 『자유를 몇 개로 쪼개어, 선거나 투표의 자유는 보장하되 나머지 자유는 보장하지 않는 일은 불가능』하다(W·J·M·매킨지 교수)는 그것을 위해선 정부가 선거에 섣불리 간섭하지 않는 것이다.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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