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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릭스, 정치기구 되기 어렵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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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조셉 나이
미국 하버드대 교수

지난달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취임 후 첫 방문 국가로 러시아를 택했다.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회담 합의문을 발표한 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더반을 찾아 제5차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공 등 신흥 경제강국)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인도·브라질·남아공의 정상이 참석한 회의에선 세계은행(WB)과 국제통화기금(IMF)의 아성에 도전할 수 있는 새로운 개발은행의 설립 계획이 발표됐다. 5개국 정상은 세계 질서의 변화를 언급하는 연설을 했으며 시 주석은 “브릭스의 발전 가능성은 무한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필자는 3년 전부터 브릭스에 대해 회의적이었으며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브릭(BRIC)이란 용어는 12년 전 골드먼삭스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였던 짐 오닐이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의 신흥 시장을 가리키기 위해 만든 것이다. 2000년에서 2008년 사이 이들 4개국이 세계 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6%에서 22%로 늘었다. 이들 국가는 이후 세계 경제의 침체 속에서도 평균보다 나은 실적을 보였다. 그러다 2009년 정치적 행보를 시작했다. 러시아에서 회담을 열었고 국제 정치기구를 만드는 길로 들어섰다. 2010년 말 남아공이 주로 정치적 이유로 여기에 가세했다.

 하지만 브릭스란 용어는 크게 이질적인 국가들을 아우르고 있다. 남아공은 나머지 국가들에 비해 규모가 매우 작으며 중국의 경제 규모는 나머지 국가 모두를 합친 것보다 크다. 또한 인도·브라질·남아공은 민주국가로서 IBSA란 이름의 별도 경제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다. 이에 비해 러시아와 중국은 독재국가이자 대국으로서 미국과 중요한 관계를 맺고 있지만 그 내용은 크게 다르다. 그뿐만 아니라 이들 두 나라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되려는 인도·브라질·남아공의 노력을 좌절시켜 왔다. 사실 과거 초강대국이던 러시아를 개발도상국 경제와 같은 범주에 넣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국가별로 보면 러시아는 수출에서 에너지 비중이 과도한 데다 에너지 국제가격의 하락 조짐이라는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경제성장률 5% 유지가 목표지만 지난해엔 성장이 상대적으로 저조했다. 브라질은 국토 면적이나 1인당 국민소득이 인도의 3배인 데다 문자해득률이 90%에 이른다. 하지만 경제성장률이 2010년 7.5%에서 지난해 1%로 하락했고 올해는 3.5%로 추정된다. 인도는 1990년대 경제를 자유화한 뒤 브라질처럼 급성장을 이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 스타일로 성장했지만 올해는 상대적으로 저조한 5.9% 성장이 예상된다. 인도는 인프라와 문자해득률을 개선하지 않는 한 중국을 따라잡기 어려울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브릭스를 3년 전보다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까? 더반 회의의 결과는 상징적이다. 새 개발은행 구조와 관련한 세부사항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실패했다. 지난번 뉴델리 회의에서 설립 계획을 발표한 이래 진전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 은행 규모와 지분에 관한 이견을 해소하지 못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의견 통일이 되지 않는 상황은 이들 국가가 서로 이질적이라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정치적으로 중국·인도·러시아는 아시아에서 주도권을 놓고 경쟁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브라질·인도·남아공은 저평가된 중국 위안화가 자국 경제에 미칠 영향을 걱정하고 있다. 3년 전 필자는 “브릭스는 동일한 생각을 지닌 국가들로 구성된 진지한 정치적 기구가 될 법하지 않다”고 썼다. 최근 브릭스 회의의 결과를 볼 때 이런 평가를 수정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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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셉 나이 미국 하버드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