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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국회의원만 욕먹나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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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7호 30면

사람들은 나라가 흔들릴 적마다 국회의원들을 비난하며 정치개혁을 부르짖곤 한다. 어쩌면 정치인이라는 존재는 어차피 욕을 얻어먹게 돼 있는 기구한 팔자와 기이한 재능을 타고났는지도 모른다. 오죽하면 『톰 소여의 모험』의 작가 마크 트웨인이 “지금까지의 사실이나 통계에 의할 것 같으면 미국에서 태어났음이 분명한 범죄계급은 의회밖에 없습니다”라고까지 한탄했겠는가.

 진보당의 노처녀 국회의원과 보수당의 노총각 국회의원이 몰래 바람난다는 매우 건전한 설정의 장편소설을 쓴 덕으로 내가 한국 정치판을 쓰레기 취급하는 데 당연히 동참할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말을 걸어오는 분들이 요사이 적지 않다. 그러나 슬픈 역설을 좀 구사해 본다면, 나는 대한민국 정치권이 대한민국의 다른 여러 영역에 비해 대단히 희망적이라고 생각한다. 요컨대 우리 종교계와 우리 교육계와 우리 문화예술계 등이 저기 저 여의도 국회의사당보다 더 청정지역이라고 누가 감히 자신 있게 주장할 수 있겠는가.

 정치는 미우니 고우니 해도 어쨌든 국가적 관심 속에서 노출이 되는 편이라 그 어둠이 빠르든 늦든 결국 드러나지만, 이 사회의 다른 버젓한 분야들의 태반은 대중의 무관심이 보초를 서고 있는 성(城) 안에서 쥐와 새만 알게 오만 황당한 난교질들이 다 벌어진다. 그런 곳들에는 정권 말기라는 것도 없어서 위대한 검찰이 불쑥 나타나 잡아가지도 않는다. 도리어 성주들이 심심치 않게 대중 앞에 나서서는 정교한 위선으로 묘한 감동을 판매하고 뒤로는 틈틈이 그 바닥의 후진 역사까지 엉뚱하게 조작하니 후일 보람찬 부관참시마저 영 쉽지가 않다.

 가장 무서운 바는, 그들은 비판 세력을 탄압하는 게 아니라 비판할 여지가 있는 늑대들의 유전자를 아예 꼬리치는 애완견으로 바꿔버린다는 점이다. 이와는 달리, 대한민국 정치가 온갖 희생과 고통 속에서 짧은 기간 동안 서구 민주주의의 이식에 성공했으며 끊임없이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자학이 직업이 아닌 다음에야 함부로 부정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늘 나라의 모든 문제를 정치의 타락 탓으로 돌린다. 왜일까? 정말 우리의 국회의원들이 우리가 키우는 개만도 못한 인간들이어서일까?

 정치적 무관심이라는 소리는 이제 옛말이다. 온라인상에서는 매일 살인행위에 가까운 언어들이 다른 정치적 입장을 지닌 서로에게 난무한다. 시인 타고르는 충고했다. “정치적 자유도 우리의 마음이 자유롭지 않으면 우리에게 자유를 주지 못한다”라고. 우리는 정말 자유인인가? 부자가 되기 위해 돈의 노예가 되듯 자신의 정치적 견해로 인해 정치의 노예가 된 것은 아닌가? 정치인을 내 정치적 이익의 대리인으로만 여기는 순간부터 우리는 정치 과잉을 넘어서 정치 중독에 빠지고 만다. 사랑마저 내려놓을 수 있는 자의 사랑이 진짜 사랑이듯 정치인을 내 안에 가두지 않을 때 진정한 정치적 지지가 가능하다.

 박근혜 대통령도, 문재인 의원도, 안철수 후보도, 대한민국 자체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도구일 뿐인 것은 그런 맥락에서다. 그렇지 않으면 한 정치인이든 한 정당이든 자칫 나조차도 알 수 없는 내 어떤 욕망과 억하심정의 가면이 되기 십상이다. 그것이 곧 아수라장의 씨앗이요 인간이라는 요물인 것이다. 한국 정치인과 한국 국민의 관계는 사랑이 아니라 성도착이다. 이 때문에 한국 정치와 한국 정치를 둘러싼 모든 것은 말로 하든 글로 하든 그 내부가 어차피 다 총칼인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그저 이념이 다른 정도가 아니라 절대로 공생할 수 없는, 만약 법만 없다면 당장 죽여버리고 싶은 사람들끼리 절반씩 나누어져 살아가고 있는 듯 보인다.

 자칭 애국자와 정의의 사도들이 사방에서 이렇게 떼 지어 들끓는데 여전히 세상이 이 지경인 까닭은 무엇으로 설명되어야 할까? 물론 모든 국민은 비록 자신의 삶은 비천할지언정 자신의 올바르고 능력 있는 대표를 뽑아 자랑스러운 의회로 보낼 빛나는 권리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정치인들이 괴물일 때 그 괴물들은 외계에서 날아온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튀어나온 것 역시 분명하다. 우리의 국회의원들은 우리의 일그러진 거울인지도 모른다. 괴롭지만 정치개혁이란 그것을 똑바로 쳐다보는 데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이응준 1990년 계간 문학과 비평에 ‘깨달음은 갑자기 찾아온다’로 등단했다. 장편소설 『내 연애의 모든 것』 『국가의 사생활』과 시집 『애인』 등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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