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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속으로] 중2, 넌 도대체 누구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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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최근 북한의 심상찮은 움직임 때문에 ‘전쟁의 위협’에 대해 한두 번씩은 생각해 봤을 게다. 그러나 여기 ‘전쟁보다 더 두려운 것이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이들이 있다. 북한보다 무섭다는 중학교 2학년 자녀를 둔 부모와 교사들이다. 북한이 남침을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중2가 무서워서’라는 우스갯소리는 이제 구문이다. 그만큼 한국 사회에서 중2는 그 누구도 다루기 힘든 존재다.

 한국청소년상담원이 전국 10만2141명의 초·중·고교생을 대상으로 ‘청소년 위기 실태’를 조사한 결과 청소년 폭력 10건 중 7건은 중학생이 가해자였다. 2008~2010년 전국 초·중·고교 폭력사건도 전체 2만2241건 중 1만5311건(69%)이 중학교에서 발생했다. 부모들은 중학생 자녀와의 대화에 어려움을 호소한다. 엄마들의 사춘기보다 다이내믹하고 언니·오빠들의 청소년기보다 훨씬 과감한 중학교 시절을 보내는 요즘 아이들을 두고 ‘중2병’이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찌질해 보일 바엔 죽는 게 낫다”

 중2병은 중학교 2학년 또래의 청소년들이 자아형성 과정에서 겪는 혼란과 불만, 일탈행위 등을 일컫는다. 수능 등 입시 부담이 큰 고교생이나 신체적으로 아직 성인에 미치지 못하는 초등학생과 달리 중학생들은 신체 발달이 왕성해 안하무인 격의 폭력성이 극대화되고 선생님과 부모님을 철저히 무시한 채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들기 쉽다. 사춘기 특유의 감수성과 상상력, 반항심과 허세가 최고조에 이르는 중2병은 중학생들이 한 번씩 앓고 지나가는 홍역과도 같다.

 “부모·형제가 안 보이죠. 그냥 다 마음에 안 드는 거예요. 애들 앞에선 선생에게 질 수 없다는 허세, 엄마에게 밀릴 수 없다는 오기, 패거리에 대한 집착 등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되죠.” 자신도 같은 과정을 겪었다고 고백하는 고교생 장모(17)양은 자신의 중2를 “찌질해 보일 바엔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던 시기”라고 회상했다. “그냥 저 말고는 세상이 다 병신 같고 왜들 사나 싶은 생각이 많았어요. 욕 없이는 대화가 안 되고, 애들이랑 모이면 ‘저 사람이 어떻게 선생이 됐지?’라며 끝도 없이 선생님 욕을 해대요. 찌질한 애들은 왕따시키고. 꿈도 없고 그냥 불안하기만 한데, 또 잘나가 보여야 하니까 교복 줄이고 한쪽 주머니엔 아이라이너, 다른 주머니엔 립틴트가 기본이죠. 대학 다니는 언니들보다 열 배는 빨리 머리를 고데로 말고 옷도 계속 사들였고요. 사진 찍어 카스(카카오스토리)랑 페이스북에 올리는 것도 주 업무죠.”

 자신은 남과 다르고 남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중2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다. 현실기피와 우울증, 과대망상에 빠지는 일도 잦다. ‘중2병 진단법’에 따르면 맛있지도 않은 커피를 마시기 시작하고, 담배를 못 피우면서 지포라이터를 들고 다니고, 부모의 말에 “프라이버시를 존중해 줘”라고 쏘아붙이는 게 대표적인 증상으로 꼽힌다.

 실제로 ‘어둠의 중2병’이란 인터넷 카페에는 “나를 포함해 지구상의 생명들은 도대체 왜 살까. 살아 있으니까 어쩔 수 없이 사는 걸까?”라거나 “문득 내 과거를 되돌아봤어. 그것은 충격이었지. 언제였을까…. 환상과 현실을 비교하는 것, 애초에 그건 어리석은 짓이었어” 등의 글이 다수를 차지한다. “괴벨스를 존경한다”는 등 사실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지적 허세를 부리는 글로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하는 것도 중2병 증세 중 하나다.

 “담임(선생님)이 말 길게 하면 진짜 너무 지겨워 담배 한 대 피우고 싶어져요. 세상이 다 마음에 안 들고, 공부 좀 하려 해도 계속 잔소리하니까 짜증만 나죠. 처음엔 가오(폼) 때문에 꽁초부터 주워다 눈물·콧물 다 흘리며 연습했는데 이젠 중독이 됐어요.” 중2 송모(14)군의 말에 친구인 최모군이 덧붙인다. “더 세게 보여야 하는데 표현이 마음대로 안 되니까 자꾸 욕하고, 말 앞에 ‘개’를 붙이게 돼요. 개더럽고, 개짜증나고, 개빡치고…. 오토바이요? 집에서도 잔소리, 학교에서도 잔소리에 가슴이 답답한데 풀 데가 없으니까, 타면 좀 속이 시원하니까 자꾸 타게 되는 거죠.”

선생도, 부모도 중2 공포증
일선 교사들도 “중학교 2학년은 가장 다루기 어려운 학년”이라고 입을 모은다. ‘중2가 되면 눈빛부터 달라진다’는 건 기본이고, 말로 해도 안 되고 때려도 안 되는 ‘이 망할×의 중2’라는 한탄부터 ‘전생의 업보’라는 자조까지 반응도 다양하다. 폭력이 나쁘다는 의식도 없고 감정 조절 능력도 부족해 사고가 많이 나는 통에 많은 교사가 담임 맡기를 기피해 중2 담임의 상당수는 기간제 교사가 감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경기도의 한 중학교 교사 A씨는 “교사 47명 중 11명이 생활지도 스트레스로 유산하거나 휴직해 교사 공백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며 “휴직 후 정신과 치료를 받는 교사도 있다”고 전했다.

 중2 담임 3년차인 서울 송파구의 중학교 교사 박모(28)씨는 “중1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때라 때리거나 소리를 지르면 분위기가 어느 정도 잡히고, 중3은 해도 될 일과 안 될 일을 구분할 줄 안다”며 “반면 중2는 학교에 적응도 됐고, 중학교 기간은 의무교육이라 퇴학이 안 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어 더 막무가내로 행동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학생인권조례가 도입된 뒤엔 교사의 훈계에 대해서도 ‘인권 침해’라며 막무가내로 대드는 아이들이 늘어 선생님들이 더욱 설 자리를 잃고 있다”고 덧붙였다.

 “중1 때는 눈에 띄지 않던 아이들이 갑자기 반항적으로 돌변하는 경우도 많아요. 빠르게 돌아가는 선풍기 날개에 대걸레 자루를 꽂아 날개 파편이 온 교실에 튀게 하는 위험한 행동도 서슴지 않고, 책상 위를 껑충껑충 뛰어다니며 집기를 부러뜨리기도 하죠. 마치 교칙을 어기는 데 온 신경을 집중하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 정도예요.” 경기도 분당의 중학교 교사 오모(48)씨의 하소연이다.

 동료 교사 이모(45)씨는 “중2는 부모·학교·교사와 사회 모두에 부정적이다. ‘어른들은 모두 다 쓰레기’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고, 선의로 도와주려는 어른에게도 고의로 상처가 되는 말과 욕을 골라 한다. 어른들 말을 잘 듣는 걸 수치스럽다고 느끼는 애들도 많다”며 “한데 막상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고민이 뭔지 물으면 대답을 피하거나 엉뚱한 얘기만 할 뿐”이라며 곤혹스러워했다. 서울 목동의 중학교 교사 박모(45)씨도 “대체 요즘 왜 그러느냐고 물으면 ‘저 중2병인 것 같아요’라고 답하는 애들도 많다”며 “중2병이 유행이 되니까 모두들 ‘나도 그런가 보다, 나도 그래야지’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부모들의 고민은 말할 것도 없다. “성적은 울고 있는데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은 하늘을 찔러요. 퉁명스럽고, 툴툴거리고, 무슨 말만 하면 ‘내 삶에 간섭하지 말라’고만 하고요. 자식이 중2병이면 귀머거리 3년, 벙어리 3년, 장님 3년살이를 각오해야 한다더니 속에서 천불이 나지만 참는 수밖에요.” 이모(43·여·서울 강서구 화곡동)씨는 중2 아들과의 요즘 생활을 이렇게 자조했다. 이씨의 남편은 “아이에게 이제 부모는 용돈 주는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아빠·엄마가 아니라 아카(아빠 카드)·엄카(엄마 카드)로 더 자주 불린다”고 한탄했다.

 또 다른 중2 학부모 이모(45·인천시 남동구 구월동)씨는 “곧잘 다니던 학원은 시도 때도 없이 땡땡이 치고, 없이 키운 것도 아닌데 동생이 뭘 먹거나 학용품이라도 살라치면 울고불고 동생을 두들겨 패고 난리를 친다”며 “결국 동생 삼겹살 먹이면 자긴 쇠고기를 먹고, 나이키 운동화 사 주면 그보다 비싼 신발을 신겨야 조용해지니 저게 무슨 병인가 싶다”며 고개를 저었다.

인터넷 발달이 중2병 심화 지적도

 중2병에 대해 전문가들은 신체 발달은 빨라졌는데 정신 발달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생기는 현상이라고 진단한다. 천근아 세브란스 소아청소년정신과 교수는 “중2는 공격성을 관장하는 남성호르몬이 급격히 폭발하고 성호르몬이 늘어나며 신체도 왕성하게 성장하는 시기인 데 반해 충동을 조절하는 전전두엽 기능은 상대적으로 덜 발달된 상태”라며 “엔진은 최신 경주용 자동차인데 브레이크는 1920~30년대 자동차급이니 사고가 많이 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위험한 행동을 불사하고 술과 담배, 오토바이 폭주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란 얘기다.

 이윤조 서울시청소년상담복지센터 팀장은 “상상 속의 관중이란 말도 있듯이 청소년기는 타인의 시선을 과도하게 의식하는 동시에 자기만의 세계에 푹 빠져 있는 시기”라며 “그래서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문제에 대해서도 ‘쪽팔린다, 창피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중2는 ‘나는 남들과 다르다’는 기본 전제가 확실한 데다 과시욕도 대단해 ‘오토바이를 타도 난 안 죽을 것’이란 강한 믿음을 갖고 있다 보니 어른들 말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다”고 덧붙였다.

 인터넷의 발달이 중2병을 심화시켰다는 지적도 있다. 박은진 인제대 정신과 교수는 “인터넷게임이나 스마트폰 등에 온종일 노출되면서 성인들의 나쁜 문화도 빨리 습득하게 되고 또래의 자살 소식이나 왕따를 모방하는 것도 쉬워졌다”며 “여기에 학업 스트레스까지 더해지면서 무기력증이나 우울증, 폭력적 성향이나 극단적 선택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박 교수는 “아이들이 가장 많이 쓰는 단어가 빡친다, 짜증난다, 지루하다는 말”이라며 “감정은 널뛰는데 이를 해소하거나 제어할 방법이 없으니 저런 단어들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2병을 두고 “사춘기 청소년은 우울증 중증환자와 같다”는 진단도 나온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지나친 경쟁으로 인한 학업 부담이 고교에서 중학교로 내려오면서 우울증 증세를 보이는 중학생들이 늘고 있다”며 “이젠 공부 잘하는 학생도 중2병에 걸리고, 차분하던 학생들도 학교에서 나름의 오락거리나 위로를 찾기 위해 왕따나 폭력에 동참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중2병이 논란이 되자 정부가 대책을 내놓기도 했다. 지난해 2월 교육부는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의 하나로 학급당 학생이 30명 이상인 중학교에는 중2 담임교사를 2명 두는 ‘복수담임제’를 시행했다가 한 학기 만에 철회했다. 문용린 서울시 교육감은 지난달 “중2병은 입학 직후 생기는 혼란이 주요인인 만큼 이때 정서적으로 안정되면 중2병도 크게 줄어들 것”이라며 체육활동 장려를 대안으로 들고 나왔다. 이후 문 교육감이 서울시내 모든 중2생을 대상으로 “단축 마라톤에 의무적으로 참가하라”는 지시를 내리자 인터넷에서 뜨거운 설전이 오갔다.

갑자기 반항 심해질 땐 전문가 찾아야

 중2병은 어떻게 치료해야 할까. 많은 부모를 위로하는 것은 ‘지랄 총량의 법칙’이다. 인간에겐 누구나 일생 동안 소비해야 하는 ‘방황의 양’이 있는데, 사춘기 시절인 중2 때 이를 쓰지 않으면 나중에 엉뚱한 방향으로 분출될 수 있다는 논리다. 학부모 신모(48)씨는 “중2병은 나라님도 못 고친다는데 엄마라고 어쩔 도리가 있겠느냐”며 “그저 고교나 대학 때 이 난리를 치는 것보다는 차라리 지금 저러는 게 낫다고 위안할 뿐”이라고 말했다.

 중2 학부모이자 교사인 성모(46)씨의 고백은 좀 더 구체적이다. “학교에서 받는 스트레스까진 참을 만했는데 막상 내 아이가 비뚤어지기 시작하니 눈앞이 막막해지더라고요. 처음엔 교회에 열심히 나가고, 혼자 울기도 했는데 여전히 답이 없었어요. 남편에게 하소연하다 싸우고, 애를 때리면 더 엇나가고, 옷이나 가방으로 달래도 그때뿐이고…. 휴대전화를 압수해도 사흘을 못 넘기고 돌려주게 돼요. 인생의 낙요? 옆집 엄마랑 맥주로 속을 달래며 서로를 위로하는 게 유일하죠.”

 천근아 교수는 “부모가 아이의 전전두엽이 돼 브레이크 역할을 적절히 해 줘야 한다”며 “컴퓨터 이용시간이나 통금시간, 해서는 안 되는 행동들의 원칙을 정확히 제시하고 한계를 설정해야 엇나가지 않는다”고 조언했다. 박은진 교수도 “중2병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면 아이들이 도움을 요청하는 신호조차 모르고 넘어갈 수 있다”며 “반항이나 우울증, 허세가 갑자기 심해질 때는 학교폭력에 시달리는 건 아닌지, 혹시 말 못할 고민은 없는지 대화를 시도하거나 전문가를 찾아가 봐야 한다”고 말했다.

글=채윤경·송지영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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