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지기들이 말하는 盧당선자 됨됨이] 너무 소탈한 성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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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유근아, 반갑다. 니 목소리 들으니까. 사업 잘되나? 잘된다고 들었다."

지난 16일 오후 정유근 대양상선 사장은 서울 을지로에 있는 사무실에서 노무현(盧武鉉)당선자의 전화를 받았다. 부산상고 동기동창들인 정화삼 서울낫소 전무.이승보 국민참여운동본부 운영위원등과 함께 있던 자리에서였다.

"깜짝 놀랐지요. 그리 바쁜 사람이 전화까지 해줘서. 당선자가 언제 술이나 한잔 하자고 해서 '그러자'고 했지요."

鄭사장등 이들 3명은 당선자의 '40년 지기'다. 특히 鄭사장은 당선자의 속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또 그는 당선자와 함께 동기생 4백80명중 한 반에 몇 명밖에 안되는 '백양장학생'이었으며, 동기생중 3명밖에 안되는 '고시 합격자'였다. 鄭사장은 행정고시, 당선자는 사법고시였다.

鄭전무와 李위원은 당선자가 각종 선거를 치를 때마다 옆에서 도왔다.당선자가 충북 청주에 내려오면 옆자리엔 鄭전무가 항상 앉는다고 한다. 여기에 동창이면서 부산에서 동성실업을 경영하는 김범구 사장이 28일 오후 서울 을지로 鄭사장 사무실에 모였다.

"우리는 상고를 나왔어요. 어릴 때부터 주산을 놓고, 돈 계산을 했습니다. 누구보다 캐피털리즘(자본주의)마인드가 돼있어요."

鄭사장은 이렇게 말하면서 "레프트(left)냐, 라이트(right)냐고 구분할 것도 없이 당연히 당선자는 라이트"라고 강조했다.

鄭전무는 "우리 기준에서 당선자는 부르주아"라고 말했다. "변호사에다 골프 치고, 기업경영도 해본 사람"이라면서 당선자를 레프트로 분류하는 경향에 대해 "어처구니 없다"고 강조했다.

-친(親)노동자 성향인 것은 사실 아닙니까?

"그런 적이 있었어요. 상고 졸업하고 잠깐 회사 다닐 당시 발등을 다쳤는데 회사가 병원비도 내주지 않아 사용자에 대한 반감이 있었어요. 게다가 88년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기전 평생을 인권변호사로서 근로자를 보호하며 살겠다고 말하기도 했었어요. 술집에서 노래를 불러도 '우리 승리하리라'만 불렀어요." 金사장은 이렇게 말하면서 "그러나 사람은 생각이 바뀌는 겁니다. 지난 연초 민주당 경선을 전후해 근로자를 보는 시각이 달라져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했어요. 노래도 부산갈매기로 바뀌었어요"라고 덧붙였다.

"학교 다닐 때부터 의협심이 강했어요. 근로자 편을 든 것은 이런 의협심 차원이었지, 기업을 엎겠다거나 사상이 그런 것은 아니었어요."(鄭전무)

그러나 당선자는 88년 국회의원이 된 후에도 울산 현대중공업등 각종 파업 현장을 찾아다니면서 친노동자 성향의 '급진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이번 대선 기간 내내 이때문에 발목이 잡히기도 했다.

"당시 당선자와 얘기 많이 했어요.나는 정치는 어느 한쪽 편을 들어선 안되며, 제발 표현은 부드럽게 하라고 말했어요. 그러면 당선자는 늘 '노사가 올바로 돼야 나라가 발전한다. 어느 한쪽 힘이 너무 세 언밸런스가 되면 기업도 안된다'고 말했어요. 노사가 밸런스가 맞아야 기업이 살고, 나라가 발전한다는 얘기였어요. 사용자가 힘이 약해 언밸런스되면 사용자 편을 들 사람이에요."

鄭사장은 그러면서 2년전 대우자동차 파업때는 당선자가 '노동자가 참아야 한다, 이러면 안된다'고 말하지 않았느냐고 설명했다. 그래서 그는 당선자가 노사문제를 엄하게 다룰 것으로 내다본다. 노동운동에 일정한 선을 긋고 그 선을 넘으면 법의 잣대를 댈 것으로 전망했다.

鄭사장은 또 당선자의 사업 경력을 강조했다. 당선자는 1995년 부산시장 선거에 출마했다가 떨어진 얼마후 생수사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잘못됐다.

"부실기업을 인수했던 모양이에요.당선자가 돈 많이 깨먹었어요.그래서 어떻게 변호사가 사기를 당하냐 하고 놀리기도 했어요." 鄭사장은 그러면서 "기업하는게 어렵다는 것을 잘 아는 사람이 레프트일리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김영삼 전대통령이 3당합당을 할 당시 당선자의 서울 여의도 집에 손명순 여사가 3번이나 찾아왔어요. 그래도 그는 끄떡도 안했어요. 정몽준씨와 합치는 문제도 당선자는 막판까지 주저했어요. 그래서 내가 그랬어요. '대통령이 되려면 합쳐야 한다'라고. 그러자 당선자는 '합쳐서 당선되면 임기내내 현대그룹을 업고 가야 되는 것 아이가'라며 안하려고 했어요."(鄭전무)

눈앞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보는 사람이기 때문에 당선자가 친 노동자나 친 시민단체 일변도로 가지 않을 것으로 확신했다.

-그러나 당선자가 충동적이고 즉흥적이라는 평도 분명히 있습니다. 지난 대선 당시 인천유세에서의 '쓰레기'발언등이 있지 않습니까?

"그때 우리도 왜 그런 얘기를 했느냐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돈 안되고 싸움하는 국회의사당을 보내자는 조크였다'고 그래요. 이때뿐만 아니었어요. '제발 설화(舌禍)일으키지 말라'고 누누이 얘기했어요. 그러면 그는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 한참 설명해요. 전부 맞는 얘기에요."(李 위원)

당선자가 본질을 중시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다는 설명이다.

鄭사장은 당선자가 너무 소탈하고 솔직해 오해사는 일이 많다고 전한다.

"80년대 초인가 당선자더러 '골프 배워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요트 탄다'고 그래요. 당시 내가 부산항만청 서기관이었는데 그걸 모를리가 있나요? 부산엔 요트 하나도 없다고 했죠. 그래도 '요트 탄다'고 말해요. 1인승 배를 두고 그는 그렇게 농담했어요. 그런데 이게 나중에 정말로 요트를 갖고 있는 것처럼 잘못 알려졌어요."

그는 이어 지난번 대선 후보 TV토론회의 예를 들었다.

"사실 그때 '실수하면 어쩌나'하고 두근두근해 하면서 봤어요. 그런데 본게임에선 절대 실수 안하잖아요. 오픈 게임과 본게임을 구분할 줄 알아요."鄭사장은 당선자가 대통령이 됐을 때와 꿈을 향해 뛰어갈 때가 다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간적인 매력은 어떤 것입니까?

"친구들중 가장 재미있고, 유쾌한 편입니다.농담 잘하고,운동 잘하고,심지어 욕까지 잘해요. 중학생 때는 권투도장에 다니기도 했어요. 꽤 잘했던지 도장 사범이 당선자 형에게 와서 권투 선수를 시키라고 했어요."(鄭전무)

골프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아무리 짜게 매겨도 90대 중반은 치며 축구도 곧잘 한다고 한다.

鄭전무는 이어 친화력은 대단하다면서 다음과 같은 일화를 소개했다.

"2000년 국회의원 선거 당시 부산 북.강서구에서 출마했어요. 내가 그 곳에서 중학교를 나왔기 때문에 당선자에게 도움이 되라고 중학교 친구 등 50여명을 모았어요. 그리고 당선자에게 와서 연설을 부탁해 당선자가 도착했어요. 당선자가 도착하니 친구들이 '술맛 떨어진다' '전라도 가라캐라'등등 고함을 질렀어요. 문밖에서 다 듣고 있더니 당선자가 들어와요. 그러더니 술 한잔씩 하며 이런 저런 얘기를 한지 1시간만에 모두들 다 친구로 만들어 버렸어요. 대선 때도 이들이 모두 열성적으로 도왔어요."

-당선자를 만나면 뭘 건의하실건가요.

"전경련을 불시에 찾아가라고 말할 겁니다. 그래서 대기업들의 우려를 불식시켜야죠. 또 법인세율을 대폭 내려야 한다고 말할 거에요. 기업을 인커리지(격려)하려면 무엇보다 세금을 낮춰야 해요. 이게 당선자의 컬러에 맞는 정책이에요."(鄭사장)

金사장은 "절대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으로 흐르지 말라고 말할 겁니다. 워낙 똑똑한 사람이라 잘하겠지만, 마음이 따뜻해 그럴 수도 있을 거에요.이걸 조심하라고 얘기하겠어요"라고 밝혔다.

김영욱 전문기자 <young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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