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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문의 검은 돌 흰 돌] 한국 1~6위 모두 출동 … 차이나 블랙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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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2012 중국 리그 다롄 팀의 박정환(왼쪽)이 시안 팀의 귀위정과 대결하는 모습.

2013 KB바둑리그가 9일 개막식을 치르고 11일 지난해 우승팀인 한게임과 4위 포스코 캠텍의 개막전으로 한 해 일정을 시작한다. 13세 최연소 신진서(포스코캠텍)에서 어느덧 리그 최연장자가 된 38세 이창호(넷마블)까지 8개 팀 40명의 선수들 면면이 실로 다채롭다. 이세돌의 신안천일염, 김지석-이동훈의 한게임, 최철한과 변상일의 SK에너지는 무게가 엇비슷하다. 그러나 진짜 강팀은 박정환의 정관장이라는 소문이고 넷마블(박영훈-이창호)과 티브로드(조한승-이지현)도 다크호스라고 한다. 천하의 이창호가 주장이 아닌 2지명이 된 것은 세월의 무상함을 보여준다. 무명과 유명의 차이가 백지장처럼 엷어지면서 올 한 해도 바둑리그는 숱한 화제를 뿌릴 것 같다.

 그러나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KB리그는 언제나 신인들의 무대였다. 소년 기사인 변상일-이동훈-신진서 등이 중용되는 이유다. 또 올해부터는 락스타리그(2부 리그) 선수들을 무한대로 기용할 수 있어 무명 신인이 전혀 예상 못한 판도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출범 10년을 맞는 KB리그는 올해도 성공이 예감된다.

 잠깐 시선을 옆으로 돌리면 중국 리그가 보인다. 2013 갑조리그(1부 리그) 12팀이 참가한 가운데 5일 항저우(沆州)에서 개막한다. 한데 이곳에 이세돌-박정환-최철한-조한승-박영훈-김지석까지 한국 랭킹 1~6위까지의 기사가 모두 출전한다. 촉망받는 신예인 나현과 얼마 전 신인왕전에서 우승한 변상일도 갑조리그에 간다. 김승재(10위)-이영구(11위)-이창호(13위)-안국현(23위)-이원영(26위)은 을조리그(2부 리그) 팀과 계약을 맺었다. 모두 14명이다. 원성진 등 군대 간 기사들을 제외하면 한국 강자들이 중국 리그에 거의 총출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 리그는 1~3부가 있고 한국과 달리 팀이 선수와 직접 계약한다. 외국 기사들에게도 문이 활짝 열려 있다. 무엇보다 중국 리그는 돈을 많이 준다. 광시(廣西)팀의 이세돌은 승리 시 11만 위안(약 2000만원)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면 한 푼도 없다. 이세돌은 중국 리그에서 한때 19연승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우며 최고 스타가 됐다. 지난해엔 을조의 광시팀을 갑조로 끌어올렸다. 다렌(大連)의 박정환은 승률 65% 달성 시 판당 8만 위안, 올해 처음 중국 리그 광둥(廣東) 팀에 진출한 박영훈은 승리 시 5만 위안, 져도 2만 위안을 받는다.

 바로 이 같은 자유로움과 다양함이 강자들에겐 최고의 매력으로 다가온다. 시장이 크고 바둑열도 뜨거워 특히 이세돌은 중국 리그에 진한 애정을 느끼고 있다. 한국은 아직 중국을 흉내 내기는 힘들다. 드래프트로 강자들을 나누고 인기 없는 기사에게도 기회를 준다. 바둑리그에 관한 한 중국이 자본주의고 한국은 중도 사회주의에 가깝다.

 그러나 일본은 이런 파티에 끼지도 못한다. 지난해 조치훈 9단이 일본 신인들과 팀을 구성해 을조리그에 참가했다. 일본 팀은 2무6패로 꼴찌를 했고 병조리그(3부 리그)로 떨어졌다. 자존심이 크게 상해 더 이상 안 올 듯싶었지만 일본은 올해 신인들로 구성된 팀을 병조에 보내기로 했다. 문을 꽁꽁 닫고 오랜 세월을 보낸 일본 바둑의 현주소다.

 중국 바둑의 부흥은 한국에도 도움이 된다. 자극도 된다. 그러나 중국 바둑이 마냥 친구인 것만은 아니다. 특히 바둑리그의 경우 중국과 한국의 격차가 너무 벌어지면 한국은 중국 리그의 선수 공급원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언젠가는 일본처럼 한국 팀을 만들어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 출범 10년을 맞는 KB리그에 마냥 박수만 보낼 수 없는 이유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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