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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박근혜 대통령은 창의적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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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철호
논설위원

요즘 수요일 저녁마다 한 대학의 ‘창의 아카데미’에 다닌다. 상사로부터 “자네 글발이 예전 같지 않아”라는 지청구를 듣고 생존본능이 꿈틀댄 것이다. 새 정부의 ‘창조경제’와 ‘창의교육’이 무엇인지도 궁금했다. 늦은 저녁 지친 몸으로 재교육을 받다 보면 꾸벅대기 일쑤다. 창의성이 무엇인지 도무지 감을 잡기 어렵다. 어떻게 창의성을 기를 수 있는지도 자꾸 헷갈린다. 그나마 한 달 동안 건진 게 있다면 딱 두 가지의 사례다.

 우선, 이탈리아 화가인 산드로 보티첼리의 창의성이다. 그의 ‘비너스의 탄생’은 르네상스 시대의 걸작이다. 하지만 1485년에는 시골 별장에 걸린 별 볼 일 없는 그림에 지나지 않았다. 피렌체를 휩쓴 라파엘로의 고전적 사실주의에 밀려 명함도 못 내밀었다. 중세의 끝자락에서 아무리 중요 부위를 금발로 가렸다고 해도, 여성 누드는 금기였다. 성경 대신 신화에서 따온 이교도(異敎徒)적 화풍이나 원근법을 무시한 비현실적인 10등신의 몸매도 외면당했다.

 성균관대 최인수 교수에 따르면 350년 이상 와인 창고에서 잠자던 이 작품이 다시 빛을 본 것은 영국의 문예비평가 존 러스킨 덕분이다. 러스킨은 “이 엄청난 명화가 너무 오래 무지와 방치 속에 갇혀 있었다”며 분노했다. 곧바로 이 작품은 우피치 미술관의 제일 좋은 자리에 내걸렸고, 오늘도 이 ‘르네상스 아이콘’ 앞에는 관람객들이 줄을 선다. 최 교수는 이렇게 묻는다. “보티첼리가 창의적일까, 아니면 러스킨이 창의적일까?” 한 개인의 창의성만큼 그 작품을 평가하는 작업도 중요하다는 의미다.

 기억에 남는 또 하나의 사례는 ‘포스트잇’의 개발 비화다. 미국 3M의 이 제품은 원래 실패작이었다. 한 연구원이 강력한 접착제를 만들려다 원료를 잘못 섞는 바람에 접착력이 형편없이 떨어졌다. 5년간 창고 속에서 폐기처분을 기다리는 신세였다. 그 후 다른 직원이 찬송가 페이지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붙였다 뗐다 할 수 있는 저점도(低粘度) 접착제를 찾는 데 골몰했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머리를 맞대고 화려하게 부활한 것이 포스트잇이다. ‘실패를 공유한다’는 3M의 문화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3M에는 ‘부트레깅(bootlegging)’이란 독특한 룰이 있다. 금주법 시절 장화 속에 술병을 몰래 숨겨 다니던 불법 행위를 본뜬 규칙이다. 이 회사의 모든 직원은 근무시간의 15%를 자기 마음대로 연구할 수 있다. 상사에게 보고하거나 허락받을 필요도 없다. 위에서 중지하라고 지시한 연구까지 비밀리에 진행할 수 있다. 실패를 권장하되, 다만 실패의 경험은 반드시 공유하도록 제도화한 것이다.

 요즘 창조경제와 창의교육을 놓고 말들이 많다. 청와대 담당 수석과 미래창조부 장관도 그 개념이 뭔지 버벅대다 새누리당에 면박을 당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창의성 자체가 ‘도움이 될 만한 새로운 뭔가를 개발한다’는 애매모호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김우식 전 연세대 총장은 이렇게 말했다. “창의성 교육을 받은 뒤 ‘이제 창의성이 무엇인지 감을 잡았다’고 하면 뭔가 잘못됐다. ‘창의성이 뭔지 갈수록 모르겠다’는 반응이 나와야 제대로 교육을 받은 것이다.”

 오히려 문제는 창의성을 들고 나온 박근혜 정부가 정말 창의적인지 헷갈린다는 점이다. 창의성의 첫째 조건은 경청(傾聽)이다. 아무리 엉뚱한 아이디어도 귀담아들어야 하고 정확하게 평가하는 작업이 중요하다. 보티첼리의 괴상한 그림을 재평가한 러스킨처럼 말이다. 이런 점에서 청와대 비서실장이 수석비서관들에게 “(대통령 발언을) 받아쓰기만 하지 말고 지적도 하고, 건의도 좀 해라”고 다그친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대통령의 지시가 “첫째, 둘째, 셋째”의 번호를 매겨가며 7000자나 되는 것도 큰일이다. 상명하달과 일사불란은 창의성과 상극이다. 아무리 대통령 앞이라도 과감하게 “노”를 외칠 수 있어야 창의성이 숨쉴 수 있다.

 박근혜 정부의 인사참사를 보면 실패의 경험을 공유했는지도 의문이다. ‘17초짜리 대변인의 대독(代讀) 사과’는 궁색하기 짝이 없다. 실패의 경험을 용감하게 공유해야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는다. 그것이 쓸모없는 비용을 줄이는 길이다. 요즘은 한 개인의 창의성보다 창의적 조직을 관리하는 지도자의 창의성에 더욱 주목하는 시대다. 오늘의 3M을 일군 윌리엄 맥나이트의 말은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우리 직원들에게 맡기면 수많은 실수를 저지를 게 분명하다. 그러나 길게 보면, 경영진이 모든 것을 틀어쥐고 이래라 저래라 강요해서 발생하는 손실에 비해 훨씬 미미한 수준일 것이다.” 창의적 조직은 용기와 믿음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이철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