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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건너 달려왔지요, 태극마크가 우릴 불러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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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파란 눈의 캐나다 출신 아이스하키 선수 브럭 라던스키(30·안양 한라). 몬테네그로 출신 축구 선수 제난 라돈치치(30·수원 삼성). 중국에서 온 작고 다부진 탁구 선수 전지희(21·포스코에너지).

 운동선수라는 것을 빼면 공통점을 찾기 힘든 세 사람을 지난달 27일 서울 태릉선수촌에서 만났다. 태어난 곳도, 생김새도 다르지만 이들을 하나로 묶는 건 한국, 한국인이다. 전지희는 2년 전 일반귀화로 한국 사람이 됐다. 라던스키는 지난달 법무부 특별귀화 심사를 통과한 ‘새내기’ 한국인이다. 라돈치치는 특별귀화에 실패한 뒤 일반귀화로 한국 국적 취득을 얻으려는 ‘예비 한국인’이다.

몬테네그로 출신 라돈치치(축구·왼쪽)와 중국에서 건너온 전지희(탁구·가운데)·캐나다 태생의 라던스키(아이스하키)가 포즈를 취했다. 세 선수는 한국 국적 취득과 국가대표 발탁에 도전장을 냈다. [김진경 기자]

 ◆“정 때문에 외롭지 않아요”=중국 청소년 탁구대표 출신인 전지희는 고교생 나이인 16세 때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 땅을 밟았다. 포스코에너지 김형석 코치가 중국에서 발탁해 데려왔다. 연습생으로 3년간 팀에서 훈련했고, 귀화한 2011년 대한탁구협회가 주는 신인상을 탔다. 그리고 올해 꿈에 그리던 태극마크를 달았다. 3일 인천에서 개막하는 코리아오픈은 국가대표가 된 뒤 출전하는 첫 번째 대회다. 그는 “중국과 달리 여기선 코치와 동료들이 ‘넌 잘할 수 있어’ ‘파이팅’ 등의 말을 자꾸 해줘 힘이 난다”면서 “힘들 때도 있지만 ‘내 곁에 누군가가 늘 함께한다’는 생각이 들어 든든하다”며 밝게 웃었다.

 라던스키는 아직 한국어가 서툴지만 2018년 평창 올림픽에서 아이스하키가 성적을 내려면 꼭 필요한 선수라 특별귀화라는 혜택을 받았다. 2008년 안양 한라에 입단한 그는 5시즌 동안 176경기에서 113골·153도움을 기록한 특급 공격수다. 귀화가 결정되자마자 그는 태릉선수촌으로 달려와 대표팀에 합류했다. 다음 달 14일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리는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세계선수권에 출전한다.

 “한국인이 친절해 외롭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는 라던스키는 귀화 제의를 큰 고민 없이 받아들였다. 특별귀화라 캐나다 국적도 유지할 수 있고, 올림픽 무대에 나설 수 있다는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와 대한민국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케이스다.

 라돈치치는 지난해 특별귀화에 실패한 뒤 일반귀화를 노리고 있다. 일반귀화를 하면 대표 선수가 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그는 여전히 한국 국적을 원한다. 여기에는 외국인 선수라는 제한에서 벗어나 몸값을 높일 수 있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깔려 있다. 한국에서 10시즌째를 맞은 라돈치치는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 같은 선수다. 팀 후배들에게 “난 곧 한국인이 될 것이니 꼬박꼬박 존댓말 써라”라고 말할 정도다.

◆“한국은 내 사랑”=스포츠계에서 귀화는 일상이 됐다. 일본은 라모스(1989년 귀화)·로페스(1997년)·산토스(2001년)·툴리오(2003년) 등 귀화 선수를 꾸준히 축구 대표팀에 뽑았다. 영국의 여자육상 세단뛰기 선수 야밀레 알다마(41)는 쿠바 태생으로 수단과 영국으로 두 차례나 국적을 바꿔가며 국제대회에 나서 화제를 낳았다. 2022 월드컵 유치에 성공한 카타르는 축구대표팀 경기력 강화를 위해 우루과이 출신 세바스티안 소리아(30)를 비롯해 브라질·가나·쿠웨이트·케냐 등에서 우수 선수를 대거 영입했다.

 한국은 그동안 순혈주의가 강해 외국인의 귀화에 소극적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한국도 변해가고 있고 국민도 언젠가는 이들의 진심을 알아줄 거라 믿기 때문이다. 전지희는 “태극마크를 달고 올림픽 무대에 나서길 간절히 바라지만 내 궁극적인 목표는 국가대표가 아니라 진정한 한국인으로 인정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라던스키 또한 “내가 특별 케이스로 한국 국적을 받은 이유를 잘 알고 있다”면서 “외국 출신으로 한국을 대표한다는 사실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라돈치치는 “한국은 이미 제2의 조국이다. 피부색과 언어가 다르다는 이유로 ‘대표팀에 뽑지 마라’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겐 ‘우리 세 명의 한국 사랑은 당신들과 다를 바 없다’는 말을 꼭 해주고 싶다”고 힘줘 말했다. 

글=송지훈·손애성 기자
사진=김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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