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둥이 영환이, 억만금 보상해 준들 …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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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연(88) 할머니가 1일 경북 경산시 자택에서 순직한 막내아들(고 정영환 경사)의 사진을 쳐다보고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막내아들은 일주일 전 경북 경산 집을 다녀갔다. 어머니 생신이었다. 2년7개월째 경찰로 일하고 있는 듬직한 아들이었다. 5형제 가운데 막내는 어머니의 자랑거리였다. 그러나 일주일 뒤, 넷째가 벼락같은 소식을 전해 왔다. “어무이, 영환이가 죽었심니더.”

 스물여섯 살의 정영환 순경. 부산 형사기동대에서 일하던 그는 1989년 5월 3일 부산 동의대에서 벌어진 시위에 투입됐다가 목숨을 잃었다. 시위대의 화염병을 피하려다 건물 아래로 추락해 숨졌다. 이른바 ‘동의대 사건’의 희생자였다.

1989년 5월 부산 동의대에서 학생 시위대가 던진 화염병으로 화재가 나 경찰관 7명이 사망했다. 왼쪽부터 사건 당시 숨진 최동문 경위, 박병환 경사, 정영환 경사, 조덕래 경사, 김명화 수경, 모성태 수경. 고 서원석 수경의 사진은 확보하지 못했다. [중앙포토]

 동의대 사건에서 순직한 정 순경은 경사로 2계급 특진했다. 그러나 유족 보상금은 3년치 월급(약 1200만원)이 전부였다. “나라 위해 봉사하다 죽었으니 보상금 액수는 중요하지 않다”고 유가족들은 마음먹었다.

 그러나 동의대 사건에 대한 평가가 역대 정권에 따라 판이하게 달라졌다. 김대중 정부 시절이던 2000년 설치된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원회는 동의대 사건을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2002년 4월 위원회는 동의대 사건 당시 시위에 참가했던 46명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했다. 평균 2500만원의 보상금도 지급됐다.

 “이건 뭔가 잘못된 결과다. 경찰에게 화염병을 던진 시위대가 민주화운동자라니….” 고 정영환 경사의 넷째 형 유환(54)씨는 이때부터 ‘동의대 사건 경찰유족회’를 조직해 동생을 비롯한 경찰 희생자들의 명예를 되찾기 위해 노력했다. 당장 민주화운동자 결정을 취소해 달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시절이던 2005년 ‘결정 취소’에 대한 헌법소원은 5대 4로 각하됐다.

 하지만 ‘경찰=가해자, 학생=민주화운동가’라는 등식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뒤집혔다. 2009년 9월 국회에선 ‘동의대 사건 등 희생자의 명예회복 및 보상에 관한 법’이 제정됐다. 이 법에 따라 지난해 9월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가 꾸려졌다. 위원회는 지난 2월 동의대 사건에서 사망한 경찰·전경 7명과 부상자 10명에 대한 보상금 지급을 최종 의결했다.

 경찰청은 1일 사망 경찰관 4명의 유가족에게 각 1억2700여만원을 지급했다. 1989년 당시 400만원밖에 받지 못했던 사망 전경 3명의 유가족에겐 각 1억1400여만원을 지급했다. 부상자 10명에게는 각 2000만원의 보상금이 돌아갔다. 동의대 사건이 벌어진 지 24년 만에 정부 차원의 공식 보상이 이뤄진 것이다.

 보상 소식이 전해진 날, 고 정영환 경사의 어머니 김우연(88) 할머니는 허리 통증으로 경산 집에 누워 있었다. “영환이는 내 나이 서른여덟 살에 본 늦둥이라 애정이 각별했심더. 막내아들이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닌데 억만금을 보상해 준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예.” 구순을 바라보는 노모(老母)의 눈시울이 축축해졌다.

정강현 기자

◆동의대 사건=부산 동의대 학생들이 학내 입시 부정 등을 이유로 시위를 하던 중 경찰과 충돌,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이다. 학생들에게 감금된 전경 5명을 경찰이 구출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이 던진 화염병에 의해 불이 나면서 경찰관 7명이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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