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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셰일가스 개발” 러, 미 에너지 혁명에 맞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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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미국에서 시작된 셰일가스의 불꽃이 바다 건너 러시아로 옮겨 붙었다. 러시아가 기술 개발에 힘입어 시베리아에 매장된 셰일가스의 개발에 본격적으로 나선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국 경제의 활력소가 되며 ‘에너지 혁명’으로까지 불린 셰일가스가 세계 2위 산유국인 러시아에서도 개발될 경우 미·러는 물론 세계의 에너지 지형이 변화될 전망이다.

 러시아 민간석유회사인 루코일의 레오니드 페둔 부사장은 “시베리아 서부 바체노프 셰일가스전을 통한 대규모 원유 생산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FT가 전했다. 바체노프 지역은 소련 시절이던 1970~80년대 지질학자들에 의해 원유 매장이 확인됐으나 추출할 수 있는 기술을 갖지 못해 방치돼 있었다. 하지만 루코일 등 러시아 석유회사들이 최근 북아메리카에서 사용 중인 셰일가스 시추 기술을 똑같이 개발하면서 길이 열렸다. 러시아 정부도 바체노프 개발에 참여하는 회사들에 세금 면제를 약속했다.

 국가 총수입의 60%를 에너지 수출에 의존하는 러시아는 먼저 셰일가스를 개발한 미국에 밀려 비상이 걸렸었다. 셰일가스가 기존의 천연가스를 대체하면서 전 세계 천연가스와 원유 가격이 떨어졌고 세계 각국은 러시아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주요 천연가스 수입국이던 우크라이나가 지난 1월 다국적 석유회사 로열더치셸과 함께 독자적인 셰일가스전 개발에 나선 데 이어 유럽 시장도 러시아산 원유·천연가스에 대한 의존도를 줄였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러시아는 지난달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2018년부터 30년간 매년 380억㎥의 천연가스를 가스관을 통해 수출하는 방안에 전격적으로 합의했다. 몇 년 전만 해도 에너지가 부족한 중국이 러시아에 매달렸지만, 이제는 러시아가 중국에 에너지를 사달라고 부탁하는 형국이다.

 하지만 러시아가 시베리아의 셰일가스 개발에 본격적으로 나서게 될 경우 상황은 달라진다. 미국에서 시작된 셰일가스발 ‘에너지 혁명’이 러시아에서도 재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풍부한 자원과 대규모 석유기업들을 보유하고 있으며 서구 국가들과 달리 환경파괴에 대한 반대 여론이 크지 않다.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의 애널리스트들은 바체노프 셰일가스전이 개발될 경우 러시아 전체 원유 생산량의 약 5%인 하루 50만 배럴이 시추됨에 따라 매년 70억 달러(약 7조8000억원)의 세수 확대를 예상했다.

 러시아가 움직인다면 중국도 셰일가스 경쟁에 더 적극적으로 뛰어들 가능성이 크다. 매장량(36.1조㎥)이 세계 최대로 추정되는 중국은 현재 정부 차원에서 128억 위안(약 2조1000억원)에 달하는 투자에 나설 계획이다. 아르헨티나와 남아프리카공화국·호주 등 셰일가스 주요 매장국들도 기술과 자금만 갖춰지면 언제든지 개발에 나설 잠재력이 있다.

정종훈 기자

◆셰일가스=퇴적암의 일종인 셰일층에 존재하는 천연가스. 기존 천연가스보다 지면 깊숙이 위치한 셰일층에 소량씩 넓게 잔류해 있다. 1999년 시추관으로 물·모래·화학약품 혼합액을 고압 분사해 가스를 빼내는 ‘수압파쇄법’이 발명된 이후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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