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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인구 - 우리의 미래상을 탐구하는 67년의 「캠페인」|대표집필 이규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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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문제의 본질>
인구문제는 인간의 집단 생활조건에 대한 문제라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시야를 넓히며 세계인구의 생활 조건문제라 할 수 있으며 좁히면 인구단위 내지는 민족단위의 인간생활 조건문제가 될 듯도 하다. 사람이 활동하는 모든 분야가 인구 문제와 관련되는 것이기 때문에 인구문제는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볼 수도 있겠고 사회문화·정신적으로도 볼 수 있어 인구 문제의 본질이 무엇이냐 설문할 때 이것이라 하고 명확히 규정하기 어려운 점이 없지 않다. 역사적으론 인구문제가 제기된 내역을 살펴본다면 얼핏 모호했던 개념에 실마리가 잡힐 듯 도하다. 하필이면「사람의 입」수를 인구라고 했으며 사람의 입수가 어찌해서 문제로서 처음 등장하게 되었는가 살펴볼 만한 것이라 하겠다.

<비관보다 기술혁신으로>
「말더스」(R; Malthus)가 「인구론」을 쓰게된 동기가 인간의 빈곤화문제에 있었다는 것은 다시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당시의 상황에서 인구는 이자가 이자를 낳듯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반하여 늘어나는 사람의 입에 들어가야 할 식량생산은 산술급수적으로 밖에 늘어나지 못했는지 모른다. 인구증가와 식량생산 증가라는 경주에서 전자가 승리 할 것이 틀림없다면 인간의 빈곤화는 필연적이라는 음울한 예상이 나오는 것도 당연했으리라.
「말더스」가 아니라도 경제적으로 음울한 결론을 내리는 경제학이 최근까지 지배적인 위치에 있었다는 것은 기술발전에 대한 인식의 결여에서 온 것인 지도 모른다. 지금도 세계인구가 2%수준에서 성장하는 것을 보고 불원한 장래에 사람 수는 「말더스」적 비운에 봉착 할 것이라는 경구를 보내는 이가 적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말더스」가 우려했던 것이 그 동안에는 기술발전으로 그럭저럭 해결되어 왔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생활조건이 현저히 개선되고 있다는 것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이라 하겠다. 오늘날 기술발전과 세계적 자원의 합리적인 활용이라는 두 개의 지주만 신뢰할 수 있다면 인구문제를 그리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한쪽에서 커다란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
세계적인 인구문제를 우리가 걱정 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개별국가의 인구문제는 나라마다 상황이 다르다는 것이 하나의 특징이라면 특징일 게다. 불란서의 영광을 되찾기 위하여 밀도가 낮지도 않은 처지에 인구를 배가시키려는 불란서 적 인구문제가 있는가하면 흑인 팽창율이 높아 백인의 비중이 떨어질까 두려운 미국적 인구문제도 있다. 남미제국에서 보듯이 자원이나 토지는 크고 넓은데 인구가 부족해서 개발에 지장을 받는 인구문제도 있다. 또한 우리와 같이 자원에 비해 인구가 많아서 개발이 어렵다고 하는 인구문제도 있는 것이다.

<인구 과잉? 빈곤의 산물?>
우리의 경우 흔히 과잉인구가 논의되고 있으며 묵시적으로 우리의 인구문제는 과잉인구문제로서 받아들여지고 있다. 실업자가 넘쳐흐르고 농업의 영세성은 더욱 가중되고 있는 상황을 보면 감각적으론 과잉 인구론의 편을 드는 것이 안전할 듯도 하다.
무엇을 기준으로 과잉인구를 판단하느냐 에도 이론이 있다. 말하기 좋은 대로 적정인구개념이 없지도 않으나 교과서안에서나 시산해 볼 수 있는 정도밖에 될 것 같지 않다. 생산 분야에서 노동력을 흡수할 수 있는 능력보다 노동력의 공급이 많으면 과잉 인구라고 말할 수 있다는 생각도 있으나, 시간적 척도를 머리에 두고 그것을 잴 것이냐 생각할 때 적절한 것 같지도 않다. 또한 잠재적 경제성장능력과 인구 성장률을 가지고 과잉 인구를 산출하는 것이 근사할 것 같기도 하다. 정신·보건 면에서는 질병인구·불구인구·주택사정·영양상태 따위로 계산해서 과잉인구를 논할 수도 있다한다. 이런저런 요인을 종합하여 활동인구 중 낭비된 인구를 기준으로 과잉 인구를 재자는 생각도 그럴듯하다. 인도의 경우, 영아사망·중도사망·질병 등으로 오는 부담이 영국의 산업혁명에 소요된 자원보다 크다는 계산도 있다 하므로 낭비 인구비율이 중요한 문제가 될 법도 하다. 낭비 인구가 많은 것이 인구 과잉에서 오는 것이냐, 아니면 빈곤을 물려받은 역사적 산물이냐 할 때 낭비 인구가 곧 과잉 인구의 판단기준이 되기에는 무리가 있을 듯하다.
어떻든 오늘의 우리처지는 과잉 인구 쪽으로 기울어진다는 것이 지배적이라 하겠으며 과잉 인구판정의 기준은 학계에 맡기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

<인구동태>
감각적으로나마 우리의 인구문제는 과잉 인구 문제라고 일단 전제할 때 우리의 인구 동태는 어느 단계에 있는가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인구 동태는 편의상 출생률과 사망률이 무질서한 원시적 상태, 출생률은 그대로 지속되나 사망률이 떨어지는 과도기, 그리고 출생률·사망률이 다같이 떨어지나 인구증가율은 높아지는 팽창기, 출생률과 사망률이 다같이 저위에서 안정되어 인구가 안정되거나 약세로 증가하는 단계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된다.

<중위출생·사망의 단계>
우리의 인구동태는 과도기를 넘어서 중위출생·중위사망의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는 것이 정부의 생각이라 한다. 이러한 공식견해에 대하여 이론이 없지 않으며 인구정책상으로 보아 인구동태가 어느 단계에 있는가를 보다 정확히 검증 확인할 필요성이 크다고 하겠다. 인구동태를 좌우하는 주 요인은 경제적 수준과 성인의 자녀관 내지 생활관이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 같다. 경제수준과 생활관은 도시와 농촌사이에 커다란 격차가 있기 때문에 도시인구 동태와 농촌인구 동태는 성질이 다를 것 같다.

<지역별로 동태 파악돼야>
이러한 자연적인 요인 외에도 이농과 도시 집중에 가져오는 사회적 인구이동이 인구의 연령 구조를 도시와 농촌에서 상반되게 변동시키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도시집중에 참여하는 인구의 대부분이 생산연령층 이기 때문에 가임층은 도시가 농촌보다 높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조사에서 나타난 바에 따르면 농촌 출생 율이 인구 천명 당 35인 정도가 된다하니 인구 증가율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일부조사를 보더라도 인구 정책의 질적 향상을 위해서 인구 동태를 지역 별 도시농촌별로 측정하는 노력이 가해져야 할 것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칠 것 같지 않다.

<당면문제>
우리가 처해있는 인구문제의 본질과 우리의 인구동태가 수 자적 뒷받침을 받지 못해서 모호하다는 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나 우리가 인구 때문에 당면하고 있는 문제가 무엇이며 어느 정도의 것이냐 도 분명 하지 못한 것 같다.

<2·3차 산업 취업 3백만 뿐>
1주일에 1시간의 노동도 하지 못하는 사람을 완전 실업자라고 규정한 정부통계를 보아도, 67연도에 67만 명의 완전 실업자가 있으니 반대로 평균가족의 평균생활비를 지탱할 수입을 가진 사람을 완전취업자로 생각한다면 취업자가 얼마나 될 것인지 의문이다. 65년의 총인구가 2천8백40만명에 달하고 있으나 2차 산업과 3차 산업에 고용된 인구는 3백11만명에 불과하다. 경제학에서 이르듯이 3차 산업에도 상당한 잠재실업자가 있다고 본다면 총인구의 1할마저 근대산업에 취업하지 못하고 있다 하겠으니 과연 실업자수가 얼마나 많을 것인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1차 산업을 포함해서 정부가 실천한 대로 고용 인원수를 잡아도 취업인구는 1천40만명에 불과하여 취업자의 부양부담이 세계적으로 높다는 것을 한눈으로 알아 볼 수 있을 것이다.
출생에서 학업종료까지의 사이에 있는 피 부양 가족은 장래 투자하고 생각하여 자위한다해도 의학의 발달로 초래되는 노인 인구의 증대는 차츰 새로운 문제를 제기시킬 것 같다. 또한 악 영양 질병 불구 등으로 오는 소모성인구 비율도 줄어가고 있다는 증거가 많지 않은 것 같다. 농촌을 떠나 도시로 집중하는 인구 이동, 내지 재배치는 경제성장의 필연적인 산물이라는 생각도 있다 66년 「센서스」 결과를 분석하면 지역별로 인구 증가율이 현저히 높은 곳은 서울·부산지구와 태백산지역이다. 태백산지역의 인구증가율이 현저히 높다는 것은 전형적인 개발효과를 표시하는 것으로 인구 재배치의 좋은 표본이 될 것 같다. 그러나 서울·부산지역의 인구 증가율이 현저히 높다는 것은 생각해 볼 문제일 것 같다. 도시발달이 경제 발전을 촉진하는 형과 반대로 마비시키는 형이 있다는 견해에 비추어볼 때 서울·부산과 같은 도시의 비대화는 어느 쪽에 기울겠는가 도 문제로 다루어져야할 것 같다.

<이농·도시집중>
도시집중은 또 다른 문제를 제기시키고 있다. 교통난으로 소모되는 하루 「에너지」가 5백 「칼로리」나 된다면 부족한 자원이나마 길에서 소모해 버리고 마는 「아이러니」가 있다. 그것 뿐 아니다. 이농과 도시빈민굴의 증대는 함수관계에 있는 것이며 교육문제, 학교 보건문제, 공해문제, 질병문제, 그리고 주택문제, 가 도시집중의 부산물로 등장하게 되었다. 흔히 우리민족은 분열과 파당, 시기, 질투, 모략, 모함 등 성향이 짙은 민족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이러한 성질도 인구문제 주택문제와 아주 무관하지 않다고 보는 생각도 있다. 격증하는 범죄, 불륜 행위, 그리고 부패 현상이 인구문제가 파생시키는 여러 가지 고통의 종합적인 산물이라는 견해도 들어주어야 할 측면이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제 문제를 단순히 과잉 인구 때문이라고 돌려버리기에는 허전한 것 같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서도 당하는 문제라고 하기에는 용기가 나지 않는다. 인구는 아무리 방치해도 4%의 성장률을 넘을 수 없다는 것이 사실인 반면 경제 성장 율은 정부 나름에 따라서는 그 몇 배의 「템포」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 부인 할 수 없는 객관적 사실인 것 같다.

<정책> 기본은 자원의 활용여하에
이와 같은 각도에서 본다면 세계인구의 증가율이 그 식량생산 증가율을 상회하지 않는 한 개 별 국가의 인구 문제는 오히려 그들의 인적·물적 자원의 활용 문제 보다 비중이 낮은 것이라고 보아야 옳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오히려 후진국의 범주에 속하는 우리로서는 경제 성장 율을 높이기 위하여 인구 증가율을 억제 시켜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앞서는 것 같다. 현재의 인구증가율이 2.7%라 한다해도 자본계수 3을 전제로 할 때 8.1%의 저축이 증가하는 인구의 부양에 흡수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높은 부담을 낮추지 않고서는 언제 우리가 근대적인 문화생활을 유지하며 언제 국제사회에서 당당한 지위를 차지할 수 있겠는가 하는 초조감이 인구억제로 반사되었다고 보는 것이 공정한 생각일 것 같다.
근대적 문화생활과 국제적 지위향상을 기대한다는 것은 곧 생활 가치관의 변화를 뜻하는 것이기에 인구문제는 가치관의 변혁으로 「클로즈·업」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도시와 농촌 사이에는 경제수준과 지식 수준 면에서 아직도 커다란 차이가 있으며 그에 따라서 가치관에는 그 이상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도시에서는 증가하는 국제 경제와 빈부의 차이로 유발되는 자극이 가속화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보다 높은 생활 수준에 대한 요구가 발전되고 있다. 생활수준의 향상욕구는 필연적으로 이른바 가족계획의식을 북돋워 주었으며 인구증가를 억제한다는 면에서는 환영할만한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가족계획 이론과 일반대중이 받아들이는 가족계획 개념에는 상당한 거리가 맀다는 것도, 분명한 것 같다. 가족계획에서는 계획적 자녀보유를 위한 피임방법을 본질로 하는데 반하여 일반 대중의 가족계획개념은 낙태를 뜻하는 것으로 오도 된 흠이 없지 않으며 모체건강을 위해서 불행한 결과를 가져왔다 하겠다. 가족계획 운동이 궤도에 오르고 또 가족계획기념이 제대로 인식되려면 계몽이 앞서야 할 것이며 그것도 농촌계몽에 중점을 두어야 할 것임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인구억제의 다른 방법으로 이민문제가 고려되는 것이 보통이나 우리의 이민은 오히려 역기능을 발휘한 것 같다. 두뇌유출도 문제거니와 자본력을 갖춘 중간 조만이 오히려 이민했다는 인상이 짙은 것 같다. 인구수가 상대적으로 주는 것도 좋지만 그들이 1인당평균 자본수진 이상을 유출시켰다면 오히려 빈곤화를 조장 시켰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인구의 생산활동 인구 화>
가족계획이나 이민이 인구의 양적 대책이라면 취업률의 재고, 낭비 인구의 축소, 도시농촌간의 인구 재배치의 합리화 평균교육 수준향상, 취업 훈련 등은 인구의 질적 대책으로 그동안 등한시된 분야라 하겠다. 추가되는 인구의 압력과 기존인구의 질적 향상으로 얻는 이득을 교량해 본다면 후자의 비중이 훨씬 높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인구증가 문제에만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은 어리석었던 것 같다.
또한 우리가 우리의 잠재력을 어느 정도 활용했는가를 되돌아 볼 때 반성해야 할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닌 듯하다. 파쟁과 낭비와 투기, 그리고 불노이득 이라는 선에서 과거 20년 간을 보냈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부패의 균형이 유지되어 모두 까마귀 떼 같이 어울렸다면 속단이겠는가.
부당한 노력에 대한 보수만을 기대하는 합리적인 사회건설에 과거 20년을 투입했다면 인구 문제가 지금처럼 다루어지지 않을 것임은 분명하다. 오히려 구인난과 확대되는 세계시장에 어떻게 대응할 것이겠는가에 더 신경을 써야 하게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인구문제의 본질이 무엇이며 지금의 인구 동태는 어느 단계에 있는가. 인구 때문에 제기되는 제 문제는 무엇이며 어느 정도인가. 그리고 이에 대하여 어떻게 대처 할 것이며 무엇을 우선적으로 해결할 것인가. 인구억제에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잠재적 능력의 개발에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인가 등등에 대하여 명쾌히 해답을 줄만한 전문가를 찾기도 어려우며, 연구기관도 없는 실정에서 인구문제에 결론을 내리는 것은 어리석을 뿐이다. 오리려 모든 문제와 통하는 인구 문제를 다룰 전문가와 전문기관을 육성하고 그들의 견해를 기다려 보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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