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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재건 어젠다 2018’ 필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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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일러스트=박용석]
사공일
본사 고문·전 재무부 장관

기획재정부는 우리 경제가 지난 7분기 동안 연속해 전기 대비 0%대의 성장에 머물렀으며 올해도 성장률은 2%를 약간 상회하는 수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세계 최대 미국경제의 2~3%대 회복세와 함께 우리에게는 특히 중요한 세계 제2대 중국 경제가 8% 이상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으며, 아직도 어렵기는 하지만 유럽 경제도 이제 어느 정도 안정세를 보이고 있어 우리 경제의 침체상을 외부 요인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물론 이러한 때에 공공부문 지출을 늘려 경기 활성화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 있는 단기대응책의 마련도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차제에 우리 경제의 근본 체질을 점검하고 성장동력을 재충전하기 위한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앞으로 5년간 우리 경제가 지향해야 할 중기 목표 설정과 이를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 로드맵에 따른 정책 집행을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여건은 좀 달랐지만 단기 경기 활성화에 초점이 맞춰진 1990년대 초반 ‘신경제 100일 계획’의 우를 되풀이하지 않아야 한다.

 마침 정부의 경제정책 전반을 총괄·조정하게 될 경제부총리제가 도입됐으니 경제부총리가 이끄는 기획재정부가 중심이 되어 ‘한국 경제 재건 어젠다 2018’(가칭)을 마련하고 올해를 그 실행 1차연도로 추진해야 한다. 물론 이 어젠다의 핵심은 1990년대 말의 환란(換亂) 이후 현재까지 급격하게 하락해 온 우리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복원하는 것이어야 한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거의 7% 수준에 있던 잠재성장률은 현재 3% 중반 수준으로 떨어져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물론 우리 경제가 그동안 많이 성숙했으며, 인구 노령화 추세의 가속화 등 여러 가지 요인으로 잠재성장률이 떨어지는 것 자체는 예상된 일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우리 경제의 성장잠재력 제고 소지는 아직 상당 부분 남아 있다.

 여기에서 경제운영의 모범국가라 할 수 있는 독일의 경우를 간략히 살펴보자. 우리는 독일의 경험에서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특히 경제 성장과 복지의 조화, 경제의 근간이 되고 있는 중소·중견기업의 육성, 동·서독 통일의 성취 등 독일의 성공한 국정운영 경험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많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더욱 유용한 교훈은 독일이 겪었던 정책적 실패와 이를 극복한 최근의 경험에서 얻을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기적을 일구어냈던 독일이 2000년대 들어와서는 ‘유럽의 병자’로 회자될 정도로 어려웠다. 실업률이 두 자릿수에 이르렀고, 정부의 실업수당이나 시혜에 의존해 생활해야 하는 인구가 400만 명이 넘어서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사회민주당의 슈뢰더 총리마저 2003년 온갖 정치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경직된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지나치게 후한 복지제도의 개혁, 그리고 과도한 규제개혁을 주 내용으로 한 경제개혁 ‘어젠다 2010’을 추진하게 되었다. 물론 이 ‘어젠다 2010’은 현 메르켈 총리의 보수연합 정부가 계승해 추진했다.

 유로화가 도입된 이래 그 덕을 가장 많이 본 나라가 독일이라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중요한 것은 ‘어젠다 2010’을 통한 경제체질 강화가 있었기에 유로화 도입에 따른 유리한 기회를 독일이 잘 활용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필자가 제안하는 ‘한국 경제 재건 어젠다 2018’은 우리 경제의 성장잠재력 향상을 위한 좀 더 포괄적이고 구체적 연차별 추진계획을 담은 것이어야 한다. 물론 현재 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소위 창조경제의 육성과 여타 서비스산업의 생산성 향상을 위한 과감한 규제개혁과 경제체제 강화도 우리 경제의 성장잠재력 향상을 위한 경제재건 어젠다의 일환으로 추진돼야 한다. 서비스산업은 기존 제조업에 비해 취업 유발 효과가 높고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창출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우리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제고하기 위한 국내·외 기업투자 촉진을 위한 더욱 적극적인 각종 규제개혁과 노동시장 유연화 노력은 물론 필요하다. 그리고 창조적 인력과 경쟁력 있는 인적자원 육성을 위한 교육개혁과 훈련·재훈련 제도를 강화하는 동시에 유휴 여성인력의 활용을 위한 정책적 노력도 경제재건 어젠다의 중요한 일환이 돼야 한다.

 그리고 각종 법과 제도의 투명성 제고와 공정한 집행, 공정거래 제도의 강화, 대기업과 중소 중견기업 간의 자발적 상생 체제 확립과 함께 우리 경제의 지속성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회적 통합 노력과 적절한 복지제도 확립, 그리고 사회안전망 강화도 물론 중요하다.

 앞으로 5년간 이러한 모든 분야에 걸친 정책적 노력이 대통령의 힘이 실린 경제부총리를 중심으로 범정부적인 차원에서 일관되게 추진된다면 우리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2018년까지 5% 수준으로 높이는 것은 가능하다고 본다.

사공일 중앙일보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