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소영의 문화 트렌드] 유리상자서 잠자는 여배우 … 이것도 예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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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6호 28면

뉴욕 현대미술관 유리상자 속에서 잠자는 여배우 틸다 스윈턴. [AP]

지난주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는 괴이한 전시작 하나가 예고 없이 나타났다. 커다란 유리상자 안에 유명 여배우 틸다 스윈턴이-조각이 아닌 진짜 그녀가-깊은 잠에 빠진 듯 8시간 동안 누워 있는 것이었다(사진).

개념미술<상>

관람객의 반응은 가지각색. AP통신에 따르면 어떤 대학생은 “죽은 사람 같아서 좀 섬뜩하더라”고 했다. 또 다른 대학생은 “평소엔 누군가를 이토록 응시하게 되지 않는데, 이렇게 타인을 응시하면서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며 진지한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어느 미술평론가는 MoMA가 요즘 들어 자꾸 유명인을 전시에 끌어들이는 것을 비판하면서도 관람객이 동시대미술에 흥미를 갖게 하는 효과는 있을 것이라 평했다. 그러나 동시대미술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이 질문부터 할 것이다. “이것도 예술이냐?”

예술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것들은 요즘 국내 미술관에서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잡다한 일상용품을 그냥 늘어놓은 듯한 작품이나 글이 빼곡한 종이 몇 장 붙여놓은 작품 같은 것 말이다.

“이것도 미술이냐”고 전에 필자와 함께 미술관을 찾은 친구가 심각하게 물었다. “이런 것을 ‘개념미술(conceptual art)’이라고 하는데, 작가의 스킬보다도 그 창작 동기와 과정의 개념이 중요한 것”이라고 설명했더니, “고도의 테크닉으로 뭔가를 만든 것도 아니고 아름답지도 않은데 그래도 예술이라고 할 수 있나?”라는 반문이 따라왔다.

이 질문은 예술, 특히 미술에 대한 전통적인 정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미술에서 미(美)는 아름다움을, 술(術)은 기술을 뜻한다. ‘미술’이라는 말은 프랑스어 ‘beaux-arts’의 번역이다. 프랑스어와 영어의 ‘art’와 그 기원인 라틴어 ‘ars’는 본래 기술을 의미했다. 그래서 의학자 히포크라테스의 명언 “Vita brevi, ars longa”는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보다 “인생은 짧고, 기술은 길다”로 해석하는 게 맞다. 어쨌거나 art가 기술과 예술을 모두 뜻하는 것은 그 두 가지가 본래 뗄 수 없는 관계였음을 보여준다.

20세기 모던아트에 이르러 미술이 미(美)와 술(術)과 가지는 관계는 다소 헐거워지고 작가의 독창적인 개념이 더 중요해졌다. 그래도 포스트모던 시대인 요즘의 개념미술만큼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에드바르 뭉크의 ‘절규’나 파블로 피카소의 ‘우는 여인’은 좁은 의미로 아름답다고 말하기 힘들지만,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다가오며 마음의 공명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있다. 이것은 넓은 의미의 미적 감동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이들 작품에는 화가의 ‘기술’이 발휘되었다. 피카소 그림이 마구 그린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미술 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이 흉내 내보려고 하면 결코 쉽지 않다.

반면에 대량생산된 물건, 글만 잔뜩 적힌 종이, 무덤덤한 퍼포먼스 등을 활용한 요즘의 개념미술은 별 시각적 충격도 없고, 작가의 ‘기술’은 더더욱 없지 않은가? 이런 작품의 원조는 마르셀 뒤샹의 ‘샘’(1917), 그 악명 높은 변기였다. 널리 알려진 대로 뒤샹은 소변기 하나를 선택해 서명을 한 다음 미술관에 전시했으며, 그런 일련의 행위가 이 작품을 충분히 예술로 만든다는 선언을 했다.

뒤샹은 단지 튀고 싶어서 변기를 미술관에 갖고 온 게 아니었다. 예술의 정의가 정확히 무엇이냐는 질문, 또 뭔가가 미술관에 전시되면 미술품으로 인정받는 식으로, 예술이 제도의 산물이 아니겠느냐는, 인문학적 질문을 던진 것이었다. 르네상스 이래 많은 서구 미술가들은 순수미술이 공예에서 분리되어 인문학과 같은 위치에 서는 것을 추구해 왔다. 개념미술은 그 궁극적인 형태로 예술과 인문학의 경계에 애매모호하게 서 있는 셈이다.

하지만 어떤 작품이 먼저 시각적으로 강렬하고 인문학적 담론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아니라 개념에만 치중해 시각적 충격이 거의 없다면, 그걸 왜 굳이 미술관에서 봐야 하느냐고 불평할 수 있다. 그저 전문가들이 예술이라니까 ‘닥치고 감상’해야 하는 건가? 다음 회에서는 그것을 이야기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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